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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본다는 것의 의미>

존 버거의 시선으로 재해석된 예술들

우리는 시각을 통해 많은 정보들을 흡수한다. 두 눈을 통해 보는 행위는 개인에 따라, 다양하게 받아들여지고 해석될 수 있다. 단순히 보는 것과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see''watch'가 구별되듯 말이다.


존 버거의 <본다는 것의 의미>는, 그의 '들여다 봄'을 통한 통찰력이 배어있는 책이다. 소설가이자 미술비평가, 문학사학자인 그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예술과 삶을 해석한다. 동물원을 통해 폭력성과 전쟁 등 20세기 인간과 짐승의 관계를 설파하고, 각종 시대성이 반영된 사진들을 통해 자본주의와 계급(신분)을 시각적으로 설명한다.


더욱이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저자의 화가들에 대한 시선 또한 남다르다는 데 있다. 화가들의 삶(표면적인 일대기)을 다루는 책들은 더이상 새롭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는 그들의 작품들에서 보여지는 사상을 짚어내면서 새로운 관점으로 화가들의 삶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이미 알고있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에 반격을 가하고, 다시, 그리고 새로이 접하게 만듦으로써 저자는 독자들로 하여금 반성과 사색을 고무시킨다. 더불어, 저자의 섬세하고도 면밀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에 대한 묘사력 또한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작품감상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창의성이 돋보여야 할(물론, 무조건 그래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서적들이 판에 박힌 듯 구태의연함을 전면에 내세우며 등장하고 있다. 새로움보다는 반복학습을 위한 책인가 싶을 정도의 서적들에 어느 누가 덥썩 손을 내밀 것인가. 최신작들이 명료한 정보들을 수집·정리하는 등의 백과사전식 서적의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 반해, 등장한지 15년이 지난 이 책이 시도한 '아카데믹 감상에 대한 거부'는 참신함 그 이상의 의의를 지니고 있다.


비판적이고도 뚜렷한 시각으로 차별성을 지닌 존 버거의 <본다는 것의 의미>는, 인문·교양의 장르까지도 아우른다. 예술가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이 책은, 기술과 형식에 치중하는 예술이 아닌 사회적 문제들과 융합시키는 방법, 윤리와 철학 등 의식이 깃든 작품을 탄생시키는 방법 등 정신력을 함양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미학과 철학이 융합된 책<본다는 것의 의미>는 예술이 사색의 중요한 소재가 될 수 있다는 명백한 믿음을 갖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익숙한 시각과 고정된 관념들로부터 벗어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책속 밑줄 긋기]


기억이라는 것은 어떤 구원의 행위임을 함축하고 있다. 기억이 되고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음이라는 것으로부터 구제되어 온 것이다. 잊혀지고 있는 것은 ㄴ버림을 받아온 것이다. - p. 82


어떤 종류가 되었건 고통을 겪으면서 도시의 거리에서 살아온 사람만이 포석·문간·벽돌담·창문 같은 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된다. - p. 142


베이컨의 작품은 사실상 순응주의적인 것이다. 그와 비교되어야만 하는 사람은 고야, 혹은 초기의 에잉젠슈테인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월트 디즈니가 되어야 한다. 베이컨과 디즈니 두 사람 모두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소외된 행동에 대한 조건을 제시하며, 그 둘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것 그대로를 인정하도록 권유한다. - p. 172


맥스 라파엘은 모든 예술이 목표하는 바는 "사물들로 이루어진 세계를 취소시켜 버리고" 가치들로 이루어진 세계를 확립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마르쿠제는 예술을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 대한 '위대한 거부'라고 설명했다. 예술이 당연히 존재하는 것과 소망하는 것 사이를 중재한다는 것은 나 자신이 말해 왔던 견해이다. - p. 230


자코메티의 죽음이 그의 작품을 그토록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온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죽음에 대한 자각과 아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 p.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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