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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명전(重眀殿),
아픈 역사가 서려있는 곳

접견소 겸 연회장으로 지어진 건물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3호


중명전은 아픈 역사가 서려있는 곳이다.
덕수궁 나들이를 마친 후, 정동길을 따라 걷다 발견하게 된 이곳. 호기심에 이끌려 들어갔다, 중요하고도 애달픈 역사의 일면을 보고 나왔다.



우리나라 궁중에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건물 중 하나



대한제국, 그러니까 고종의 시기에 지어진 중명전은 양식 형태의 2층(관람 불가, 전시 및 특정 기간 개방) 벽돌집이다. 덕수궁 별채로 1901년 황실도서관으로 지어진 이곳은, 1904년 덕수궁이 불탔을 때 고종의 집무실과 외국사절 알현실로 사용됐다. 첫 이름은 수옥헌이었다.





중명전은 '아픈 역사가 서린' 곳이다. 바로 이곳에서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이토 히로부미의 강압에 의해 체결된 을사늑약의 비탄을 간직한 곳이다. 아픔과 슬픔이 뒤섞인 이곳에서는, 중요한 역사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 넓진 않은 공간이지만 한참을 머무르며, 각종 설명들을 읽고 들었다.





끝까지 을사늑약을 반대했던 한규설의 의지와 고종의 선언문을 확인할 수도 있다.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의 대신들을 모아놓고 새벽까지 괴롭혔다고 한다. 결국 을사늑약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 따라서, 우리가 배워왔던 을사조약이 아닌 을사'늑약'이 올바른 명칭이라 할 수 있겠다. 중명전에서는, 늑약의 모순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고자 네덜란드 헤이그에 파견됐던 '헤이그 특(밀)사'의 활약도 확인할 수 있다.





고종이 강제 퇴위할 때까지 머물렀던 중명전. 마당(뜰) 한 켠에 놓인 벤치에 앉아 힐링하는 맛도 느낄 수 있었던 곳이다. 이 방문을 통해 역사 학습을 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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