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 시, 지도를 보며 길을 찾기보다는 주민들에게 말을 걸어 찾는 경우가 많다(아니, 거의 대부분이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많은 이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친절한 사람들은 자신이 함께 할 수 있는 곳까지 동행하면서까지 길을 알려주는 호의를 베풀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낯이 뜨거워질 정도로 고마울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내겐 익숙한 길이지만 헤매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플 때가 많다. 얼마 전에도, 고속터미널역에서 일회용 승차권 발급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난감해하는 러시아 여행객 '닉'에게 도움을 줬다. 그의 목적지는 4호선 라인인 혜화역이었고, 고속터미널역에서 갈 경우 3호선을 타고 충무로역에서 환승해야하기 때문에, 나는 3호선을 타는 곳까지 그를 안내했다. 우리나라 지하철이 여간 복잡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어 표지판을 볼 줄 아는 내국인들마저 복잡하게 여길 만한 지하철. 외국인들에겐 낯설기 짝이 없을 게 분명하다.
어찌됐든 짧은 동행길에,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됐고, 그냥 가기엔 머쓱했기에 약간의 대화를 나눴다. 한국 여행이 처음이라는 그는, 혜화역에 호텔이 있어 그곳으로 향하려는 것. 나는 블라디보스톡에 가보고 싶다며 수줍은 너스레(?)를 떨었다.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다시 한 번 충무로역에서 4호선으로 환승하라고 일러줬고, 그렇게 우리의 짧은 만남은 마무리됐다. 뭐, 앞날은 그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으니, 이번 만남이 마지막이 아닐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작은 호의가 그에겐 그래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또한, 낯선 땅에 첫 발을 디딘 외국인에게 '한국인은 꽤 친절하구나'라는 국민성도 심어줄 수 있었으리라고 감히 단정지어본다. 내가 닉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아왔다. 그러기에, 같은 방법으로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어야 함이 마땅하다고 본다.
누군가 말했다. 인연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 인연뿐 아니라, 행동 양식 또한 돌고 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저지른 잘못은 같은 값은 아닐지라도 반드시 죗값으로 돌아오기 마련이고, 나의 호의 역시 언젠가는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군가의 호의로 돌아온다고 굳게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왕이면 친절하게 살아가는 편이 좋다고 본다. 특히, 낯선 사람에게 날을 세울 필요는 없다고 본다. 도움을 줄 수 있는 한에서는, 큰 손해를 볼 상황이 아니라면, 도움을 주는 편이 좋다고 본다.
나이가 들수록, 사정은 조금 더 나아지지만 도움 역시 점점 더 필요하게 된다는 걸 느낀다. 타인은 소중하다.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숙명을 안고 태어난 존재다. 나의 존재만 놓고 봐도, 나는 홀로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관계의 가지를 이어가다보면, 우리 모두는 전 세계의 어떤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이 블로그에서 글을 쓸 수 있게된 것은, 블로그를 만든 사람의 덕분이고, 내가 글자를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부모와 나에게 글자와 글쓰기를 알려준 선생님들의 노고 덕분이다. 지금의 나는, 홀로 선 것이 아니라는 게 분명하다.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주자! 받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면, '더' 주자!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니까.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할거라면, 결국 좋은 것뿐 아니라, 원치 않았던 것까지 받게 될 것이다. 이 점을 명시하고, 우리 모두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자세를 취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