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어느 가족>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걷는 듯 천천히>는 그의 일상과 영화, 미디어에 대한 단상을 확인할 수 있는 산문집이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때는 3년 전. 비록 <어느 가족>에 대한 글은 만나볼 수 없었지만, 그의 전작들에 대한 이야기와 방송가에서 활동했을 당시의 이야기 등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무도 모른다>, <원더풀 라이프>, <디스턴스>, <공기인형>,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에 대한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었지만, 유독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과 <걸어도 걸어도>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특히, <걸어도 걸어도>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 대한 심상 등에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들의 주 소재인 '가족'에 대한 '개인사'를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누구보다 가족에 대해 힘주어 말하는 감독은 정작 자신의 가족들에게는 다소 소홀한 경향이 있다. 바쁘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집에 들른 자신에게 세 살 난 딸이 "또 와!"라고 말했다는 건, 음. 나는 당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걸어도 걸어도>의 탄생은, '이번이 어머니와의 마지막 식사가 되겠구나'라는 직감이 현실로 이어진 직후라고 한다. 이렇듯, <걷는 듯 천천히>에는 감독의 씁쓸하고 슬픈 과거들이 꽤 솔직하고 담백하게 기록돼 있다.
많은 영화팬들이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영화 작업에 있어, 어디에서 영감을 받고 어떻게 연출해나가는지에 대해 궁금해할 것이다.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영화 전문 서적은 아니기에 특정한 매뉴얼이나 가이드라인으로 기술을 일러주지는 않지만. 감독은, 신칸센(기차)이나 오즈 야스지로가 극본가 노다 고고 등과 장기 제츄하면서 <초여름>, <만춘>, <동경이야기> 각본을 집필한 '지가사키관'이라는 낡은 여관에서 영감을 떠올리고 글 작업을 한다고 고백했다. 물론, 밝히지 않은 시간대나 장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왠지 같은 행동을 해보고 싶다(잠시나마 예술가가 되어보는 것에 대한 동경이랄까).
영화 연출(현장 작업) 과정에 있어서는, 매뉴얼이 없다는 것이 감독만의 방식이다. 아이들에게는 미리 대본을 주지 않고, 현장에서 말로 전달(설명)하는 것이 감독의 노하우라고 한다. 또한, 감독은 배우(스태프)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의 '생활이 밴' 대사를 쓰는 취미도 있다고 한다. '일상의 디테일'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이것이 현실을 반영하는 영화를 만드는 이들의 참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백하건대 연속극을 좋아합니다. (중략)
일상의 디테일을 주의깊게 살피는 그들의 눈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 말과 움직임을 배우와 함께 발견하는 것이 나의 연출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각본도 직접 쓰고, 촬영 현장에서 가차없이 버리기도 한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게 각본과 연출을 겸하는 것의 큰 이점이다.'
한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배우(대상)는 다큐멘터리에서 만난 일반인들이라고 한다. 이 점을 통해, 감독은 일상을 반영하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고 본다. 더불어, 관객이 고개 끄덕이고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노라고 생각하는 문구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능하면 영화에서도 슬픔이나 외로움 같은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으면서 표현해보고 싶다. 문장에서의 '행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면서, 보는 이들이 상상력으로 빈 곳을 채우는 식의 영화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고 있다.'
'만약 어떤 작품에 이야기할 만한 메시지라는 것이 포함돼 있다면, 그것은 만든 사람이 아닌 독자나 관객이 발견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감독은, 자신의 경험에 의해 축적된 가치관을 표현하는 인물이 아닐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그려내는 가족 구성원들은, 보편적인 듯 보이지만 어딘가 다르고 낯선 모습들도 지니고 있다. 즉,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다.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포용하려면 경험과 동시에 세상에 대한 따듯한 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는 것,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충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이 메시지들을 만나볼 수 있는 문구들을 옮겨 본다.
'감정이 형태를 가지려면, 영화로 치면 영화 밖의 또다른 한 가지, 자신 이외의 어떤 대상이 필요하다. 감정은 그 외부와의 만남이나 충돌에 의해 생긴다. 어떤 풍경을 마주한 뒤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지금 세 살인 딸이 열 살이 되었을 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며 만들었습니다. 세계는 풍요롭고, 일상은 있는 그대로 아름다우며, 생명은 그 자체로 '기적'인 거야, 그렇게 딸에게 말을 걸듯 만들었습니다.'
'영화도 스포츠처럼 눈에 보이는 형태로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책으로 친다면 실용서는 아니다. 보고 기운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치는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가치 있는 거라고 생각해도 좋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 오다기리 조가 연기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는 쓸데없는 것도 필요한 거야. 모두 의미 있는 것만 있다고 쳐봐. 숨막혀서 못 살아."'
'이 영화(<자전거 도둑>)는 복잡하다. 그것은 물론 치졸해서가 아니라, 인생과 세계의 복잡성을 정확히 반영한 데서 생겨난 복잡함이다.'
한편, '미디어의 틈새에서'와 '3월 11일. 지금부터' 챕터 속의 글들에는, 여느 글들과는 달리 양도 긴데다 냉철하고 비판적인 시선이 담겨있다. TV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 드러나는 부분들이다.
내가 가장 감명받은 글을 옮기며, 서평을 마무리하겠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실패까지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결국 문화로 성숙된다. 그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망각을 강요하는 것은 인간에게 동물이 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은 정치와 언론이 행할 수 있는 가장 강하고, 가장 치졸한 폭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