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적으로 봤을 때 <쇼코의 미소>는 에세이와 소설 그 경계쯤에 서 있는 느낌이다. 누군가의 사담을 그려놓은 듯한 이 소설은 읽는 이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고, 이로 인해 베스트셀러 자리까지 석권한 바 있는 작품이다.
이 책은 소설집이다. <쇼코의 미소> 외 7개의 단편으로 엮여있다. 어쨌든, 이 포스트에서는 메인 작품인 <쇼코의 미소>에 대한 감상만 풀어보겠다.
등장인물들로는 쇼코와 소유네 가족들이 있다. 학창시절, 소유네 집에서 머무른 바 있는 쇼코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꽤 정이 든다. 쇼코가 본국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둘은 편지를 주고 받으며 관계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쇼코와 편지를 주고 받은 사람은 소유만이 아니었다. 소유의 할아버지도 일본어로 쇼코와 편지를 주고 받아왔던 것이다. 놀랍게도, 쇼코의 진심을 담은 편지는 소유가 아닌 할아버지에게 부쳐졌다. 그렇게 오랜 기간 쇼코는 소유와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써 풀어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쇼코는 '왜'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진심을 내비쳤던 것일까. 소유에게는 '형식적인' 내용, 그러니까 안부를 묻는 따위 정도였지만, 할아버지에게는 쇼코 자신이 처한 내외적 상황, 그늘까지도 모두 털어놓았다. 이유는 '병'이다. 쇼코와 할아버지에게는 병이 있었다. 쇼코에게는 마음의 병, 할아버지에게는 육체의 병이... 그렇게 병을 중심으로 국가와 언어, 세대를 초월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 둘에게만 병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이 소설에 공감하고 위로받았던 이유는, 똑같은 병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그늘'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 누구에게도 쉽게 터놓지 못했을 병. 작든 크든 우리에게는 개인적인 심신의 그늘이 있고, 그렇기에 쇼코와 할아버지의 글(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위로받을 수 있었다.
소유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대표적인 '청춘의 병'을 앓고 있는 인물이다. 불안하지만 나아갈 수 없는 현실, 현실과 이상(꿈)과의 괴리에서 오는 딜레마, 타인과의 경쟁은 대개의 청춘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마음의 병으로 볼 수 있다. 소유의 엄마도 마찬가지다. 겉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로부터 느끼는 고통과 그로 인해 어떠한 틀 안에 갇혀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문제의 '미소'는 무엇일까. 어딘지 모르게 단정하고 예의바를 듯 보이는 쇼코의 미소는 생애 풍파를 겪은 이의 '올곧은 듯 보이는' 표정이다. 하지만, 그 미소는 웃음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미소짓고 있지만, 실상은 미소짓지 못한 상황에 처한 이의 '사회 적 활동'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메시지를 더 얻을 수 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라는 노래 제목이 불현듯 떠오른다.
이렇듯 <쇼코의 미소>에서는 '다양한 그늘'을 지니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독자들에게 공감과 위안을 전한다. 누구든 타인에게 말 꺼내지 못하는 그늘이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는다면, 그 그늘을 조금은 드리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담백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소설을 만나게 되어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