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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불안>

지위(status)로부터 기인된 현대인들의 불안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은 제목 그대로 현대인들의 불안을 다룬다. 저자는, 책의 첫머리에서 불안에 대한 정의 아래에 지위status와 그로 인한 불안들을 정리한다. 한편, 그가 내세운 명제는 지위로 인한 불안과 지위를 향한 갈망들에 대해서다. 물론 지위에 대한 욕망은 필요한 것이지만 이에 대한 지나친 갈망은 결코 인간에게 이롭지 않다고 정리한다. 지위에 대한 갈망과 그로 인한 불안에 대처하는 가장 유익한 방법은 상황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노력한다는 것에서부터 「불안」은 시작된다.


책은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을 통해 불안의 원인을 나열하고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로 해법을 제시한다(제시한다기 보다는 독자 스스로가 깨닫기를 고무시킨다).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차지하는 지위로 인한 불안들에 대해 사회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라고 말한다. 책의 모든 내용들을 모아보면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며,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는 생활 속에서의 만족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높은 지위를 바라는 궁극적인 이유는 결국 사랑과 행복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 행복, 기쁨, 인정, 명예 등의 비가시적인 지향점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물질적인 요소로 인해서만 타인에게 '표시'되기 때문에 우리는 지위를 물질적인 것들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짙다. 그래서 우리는 속물근성을 비난하거나 못마땅해하다가도, 그것이 사랑과 인정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하게 확실한 수단'이라 여기고 쫓고 있다는 것이 드 보통의 주장이다. 한편, 하늘에서 내려온 천부적 계급주의가 아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성공이 '능력주의'로 변화되었기 때문에 과거에 있었던 가난의 대물림이 현세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책 속의 한 부분이다. 자수성가한 산업가이자 미국인 거부 앤드루 카네기는 기부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자선 행위로는 개인이든 인류든 나아질 수가 없다.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도움을 요구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귀한 사람은 결코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게 됐기에, 사람들은 지위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것이라 말한다. 


이렇게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사회생활로 인한 불안을 느끼며 살아가는데 이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들을 제시한다. 필자 나름의 분석이지만 드 보통은 책에서 '불안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하는 듯 하다. 불안 '덕분'에 안전을 도모하기도 하고 능력을 계발하기도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불안 역시 나름의 쓸모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많은 철학자들의 말을 빌어 여론(외부)의 표시에 의존할 것이 아닌 우리 내부의 양심에 따르라고 권한다. 여론은 자주 변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논리(이성)에 기초하여 자신의 가치를 느껴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 더 탄탄하다는 것이 드 보통의 철학적 해결법의 정리다.


또한, 예술을 가까이 하는 것도 불안의 해결책의 한 부분일 수 있다.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은 '세상을 자신이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낫고 더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갈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우리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큰 부분이 될 것이다. 여기에는 희극에서부터 비극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예술들이 포함되는데, 희극의 경우에는 조롱이나 유머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조롱할 일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역할을 하고, 비극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의 실패에 관심을 가지면서 실패의 유래를 이해할 수 있기에 좋다고 말한다.


한편, 정치적인 면에서는 자본주의의 사회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근대의 성공적 삶이라는 개념은, 돈과 선(善)을 연결시킬 뿐 아니라 돈과 행복을 연결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그 행복의 가파른 절벽을 다 기어 올라가면 넓고 높은 고원에서 계속 살 것이라고 상상하고 '싶어 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또 다시 '불안과 욕망'이 뒤엉키는 새로운 지지대로 '내려가야'한다는 것을 드 보통은 설파한다. '정치' 챕터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래와 같다. 불안을 극복하거나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 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쯤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기독교의 사상으로부터 불안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장에서는, 많은 이야기들 중 우리가 우주(광대한 풍경) 아래에서는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 보통이 우리에게 주는 불안의 심리에 대한 위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보헤미아를 통해 불안한 마음을 해소할 수 있는데,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에 의한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것이 그 뒷받침이다.


이렇듯 책은, 불안의 원인을 지위(타인과의 비교)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전제 하에 일상에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불안한 삶을 살고있는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개인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와 시간을 제공할 것이다.



[책 속에서]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남의 관심 때문에 기운이 나고 무시 때문에 상처를 받는 자신을 보면,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어디 있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 p.22


설사 웃풍이 심하고 비위생적인 오두막에 살면서 크고 따뜻한 성에 사는 귀족의 지배에 시달린다 해도, 우리와 동등한 사람들이 우리와 똑같이 사는 것을 본다면 우리의 조건은 정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괴로운 조건이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질투심이 생겨나는 일은 드물다는 것이다. 그러나 쾌적한 집에 살며 편안한 일자리로 출퇴근한다 해도 경솔하게 동창회에 나갔다가 옛 친구 몇 명(이들보다 더 강력한 준거집단은 없다)이 아주 매력적인 일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우리 집보다 더 큰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왜 이리 불행하냐는 생각에 시달려 정신을 못 가누기 십상일 것이다. p.56에서


"사람은 거짓되고, 음험하고, 기만적이고, 교활하고, 자신의 이익에는 탐욕스럽고 남의 이익에는 둔감하므로, 적게 믿고 그보다 더 적게 신뢰한다면 잘못될 일이 없을 것이다." (구이차르디니) p.123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의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ㅡ실제로 또는 예술작품을 통하여ㅡ것일 수도 있다.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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