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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일일시호일> 리뷰,
다도로부터 배우는 인생

<일일시호일>. 故 키키 키린의 유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예매했던 영화다. 그녀의 오랜 팬으로, 결코 놓칠 수 없었던 작품. 역시나 좋았다.


같은 영화를 봐도, 보는 이의 집중 포인트가 다르다. 나는 이 영화를 볼 때 키키 키린의 얼굴과 몸짓 등에 집중했다. 그녀의 새로운 연기를 더 이상 만나볼 수 없다는 사실에, 어떻게든 더 자세히 들여다보려 했다. 애도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키키 키린은 주인공 노리코의 다도 선생 다케타 역을 맡았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주인공 노리코는, 자신이 좋아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아가던 중 엄마의 권유로 얼떨결에 다도를 배우게 된다. 영화는, 노리코가 처음 다도를 배우게 된 스무 살부터 25년이 지난 시점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 긴 시간 동안 노리코는 차(茶)를 통해 인생을 배운다.



솔직히 <일일시호일>을 보며 가장 놀랐던 것은, 노리코가 다도를 20년 이상 배웠다는 점이다. '1년 정도 배우겠지'라고 나의 예상과는 달리, 노리코의 차에 대한 열정과 인내는 상당했다. 느리지만 꾸준히 다도를 배움으로써 성장해나가는 노리코의 삶 자체만으로도 내게는 자극이 되었다.



한데, 노리코의 삶은 허상이 아니다. <일일시호일>은 초판 이후 17년 동안 40만 부 이상 판매되며 '인생 에세이'로 불리는 스테디셀러 <매일매일 좋은 날>을 원작으로 탄생된 영화이기 때문에, 저자 모리시타 노리코의 삶이 반영돼 있다. 실제로 모리시타 노리코가 다도를 배운 세월은 40년을 넘겼고, 2010년에는 오모티센케 교수 자격까지 얻었다고 한다.


<일일시호일>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져있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의 차 한 잔을 건넨다. 저자의 삶 자체가 주제 의식과 닿아있어 더 큰 감동을 전하는 영화는 '매일이 좋은 날이니, 현재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현재에 집중하라는 것은,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것이다. 사회적 편견에 끼워 맞추거나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좋은 날을 보낼 수 있다.



노리코가 친척인 미치코의 성격과 삶을 부러워했지만, 다도를 통해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함으로써 자족의 삶을 살게 되는 과정은 이 영화가 전하는 궁극적인 메시지다.


이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이 인상적이다. 감독은 현재, 그리고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집중할 요소'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가령, 노리코가 찬 물과 따뜻한 물을 떨어뜨릴 때는 소리에 집중하게 만들고, 문자를 통해 실체를 연상화하는 장면에서는 이미지에 집중하게 만든다. 특히, 나뭇잎의 본질로 이끄는 카메라의 시선을 담은 엔딩 신은 감탄사를 내뱉게 만들 정도로 강렬했다.


한편, 영화 초반에 노리코 스스로가 고백했던 덜렁댐은 다도를 배움으로써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집중의 힘이다.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영화는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 귀결된다.

모두의 삶은 다르기에, 생을 살아가는 정답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 답을 스스로에게 찾아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일일시호일>은, 불안 위를 걷는 청춘들을 바로 잡아주는 영화다.


비슷한 일상이 되풀이되고, 같은 절기와 계절이 도래해도 매 순간은 다르다. 영화는, 자신에게 집중함과 동시에 현재에 최선을 다 할 것도 권한다. 노리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처럼, 우리네 삶은 예측 불가한 요소들로 점철돼 있다. 그러니, 미래에 대한 앞선 고민과 불안 때문에 힘들어하지 말자. 훗날의 후회보다는, 후회하지 않을 만한 지금의 만족이 더 좋다.


<일일시호일>과 비슷한 일본 영화들은, 고개 끄덕일 만한 공감 요소와 마음의 위안이 되는 힐링의 힘이 있다. 특유의 감수성과 강단 있는 메시지는, 특별한 사건을 그리지 않아도 묵직함 감동을 전한다. 마음이 번잡하고 고통스럽다면 이 영화를 통해 위로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 영화 속 계절을 담은 과자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입맛을 돌게 만들 정도로 예쁘다. 영화를 보러 갈 계획이라면, 관람 후 방문할 분위기 좋은 찻집을 찾아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 키키 키린은 마지막 모습까지 아름다웠다. 영화 속 "그럼 난 100세가 되는거야?"라는 대사가 괜히 더 아프게 느껴졌는데, 그녀의 팬이라면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 이 영화가 좋았던 분들께 키키 키린이 주연을 맡은 <앙: 단팥 인생 이야기(감독, 가와세 나오미)>를 추천한다. 단언컨대, 만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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