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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들>

고통과 위로의 영화

예상치 못하게 이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감상한 이유가 컸기 때문이다. 나는 괜히 포스터를 원망했다. 눈물에 대한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두 소녀를 에워싼 고운 빛깔의 봉숭아꽃, 그리고 녹잎들. 햇살을 받아 투명함까지 빛과 색들은 영화에 아픔일랑 없을 것, 이라 예상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 포스터를 보고, 영화 속에 이토록 가슴 시린 고통이 존재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는 아팠다. 다분히 현실적이었고, 그래서 공감도가 컸다. 가정(환경)에서의 차이, 거기에서부터 기인되는 아이 개인의 의식, 집단 따돌림, 기타 가정과 사회의 문제들. <우리들>은, 초등학생 여아들의 집단 따돌림을 주 소재로 다루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 도처에서 널려있는 '사회적' 문제들을 알알이 짚어낸다.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친구들에게 선한(어쩌면, 굴복) 자세를 취한다. 성인인 지금에서야, 인간관계에 있어 본인 의지대로 대상을 선택하고 나름대로의 처세를 취하겠지만 학창시절에는 다르다. 공부를 잘 하고, 이성친구와의 교제가 원활한 것보다 동성 친구 간의 원활한 관계가 가장 중요했다. 좋은 교우관계를 갖는 건 권력을 쥐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나 할까. 친구들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힘 있는' 친구들을 우리는 '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선'은, 친구가 없다. 즉, 학교에서 힘이 없다. 그녀의 학교생활을 무기력하다. 어디 그것 뿐이겠는가. 거기에. 친구들의 눈치까지 봐야 할 신세다. 영화의 첫 신(scene)에서 쉴새 없이 눈치를 보는 선의 표정은 선의 학교생활 전반을 압축한다. 그런 그녀에게 힘이 되어 줄 친구 한 명이 등장한다. 바로 '지아'라는 친구다. 친구가 없는 선과, 새 친구가 없는 지아는 그렇게 친구가 된다. 선과 지아는 서로의 결핍을 채워나가며 가까이 지내지만, 결핍은 소녀들 개인의 내면에 또 다른 응어리로 자리잡는다. 경제력이 약한 선은, 갖고 싶은 걸 살 수 있고 학원을 다닐 수 있는 지아에게 열등감을, 지아는 선 모녀의 단란한 모습에 부러움과 시샘을 느낀다. 두 소녀는 상황과 심경의 곡절로 인해 관계의 변화를 맞는다.



관계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두 소녀의 가정사와 선과 지아를 따돌리던 '보라'의 사정도 보여준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고민과 상처가 있다. 결국 <우리들>은, 이 문제를 꼬집어 낸다. 우리가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선과 지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는 고민과 아픔이 있다. 작중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안고 있는 고통들은 관계라는 치료제를 통해 치유되어야 할 것들이다. 선의 동생 '윤'은, 덩치가 큰 친구와 노느라 표면적 상처를 얻지만 마음의 상처는 받지 않는 천진한 어린이다. "그럼 언제 놀아? 친구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친구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나 그냥 놀고 싶은데!"라는 대사에서 우리 모두는 움찔했을 것이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는 사회적 의식, 개인의 의지보다 타인의 시선으로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피동적인 우리들을 반성하게 만드는 대사다.


영화를 보며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나를 둘러싼 관계(사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선이 처한 환경이 나의 어린시절과 (놀라울 정도로)비슷해서, 그녀가 감내해야 할 고통의 정도를 잘 알아서, 뜨거운 눈물이 나온 것도 있다. <우리들>은 어린시절에서부터 부모가 된 시기에 이르기까지의 성장통 모두를 담아낸다. 그 안에는 공감과 연민, 고통과 슬픔 모두가 존재한다. 게다가 감초 역을 톡톡히 해내는 '윤'은 귀여운 매력으로 감상자들에게 웃음까지 선사한다.


'나의 우리들(관계)'을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 <우리들>. 개인과 사회문제 모두를 아우르는 이 영화는, 알찬 작품이다. 어떤 장면 하나 버릴 것 없는 영화, 미사여구 없이도 아름다운 눈물을 쏟게 만드는 영화다. 상처 하나 없는 사람 없듯 위로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 또한 없다. 아픔의 조각들을 물들어 있는 듯 보이지만, 따듯한 시선이 배어있는 <우리들>은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본다면 더욱 좋을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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