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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버나움>,
무책임한 부모들을 고소합니다

이토록 범죄가 충분히 '이해'되는 영화가 또 있을까


<가버나움>은 시종일관 먹먹함이 이어지는 영화다. 주인공 자인이 '부모를 고소하겠다'는 명분으로 법정에 들어서는 시퀀스로부터 시작되는 이 작품. 과연 이들 가족에게는 어떤 사건이 있었던 걸까.



영화는 열두 살 쯤 되는 주인공 자인의 시선에서 본 레바논의 '현실'을 스케치한다. 자인은 자신이 몇 살인지조차 모른다. 부모가 출생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서류 상으로는 자인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상황은 자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자인에게는 형제들이 많은데, 그들 모두 같은 과거를 걸어왔을 것이다. 그러던 중 자인의 여동생 사하르가 '거래'되고 만다. 가난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부모가 자인의 동생을 건달에게 팔아 넘긴 것이다.


더 이상 자인은 이 집구석에 있을 이유가 없다. 가출을 택한 자인은 길거리를 배회하며 먹거리와 일거리를 찾아 나선다. 그러던 중 불법체류자 라힐을 만나 그녀와 함께 살아가게 된다.


라힐에게는 한 살배기 아들 요나스가 있다. 라힐이 일 때문에 집을 비우는 동안, 자인은 요나스를 돌본다. 동생을 돌봐온 경험 덕분인지, 자인은 요나스를 곧잘 보살핀다. 그러던 어느 날, 라힐은 불법체류로 수감되고 만다. 집에는 라힐이 숨겨 둔 돈 몇 푼뿐이다.



장시간 동안 영화는 자인이 요나스와 함께 생활을 이어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쓰라리고 힘겨운 시간들이 이어지지만, 결코 자인은 요나스를 포기하지 않는다. 부모와는 달리, 혈연조차 아닌 요나스를 끝까지 책임지려는 자인의 분투는 아프지만 감동적이다.



자인은 몸소 경험했다. 최악의 위기와 함께, 그 상황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있는 유혹들이 찾아온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가족이라면, 특히 혈연에 의한 관계라면 그 끈을 쉽게 놓아버려서는 안 될 일이다.


물론, 가족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족을 팔아 넘기는 부모의 행각이 없었다면 자인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자인은 자신의 부모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무책임한 부모들에게 경고한다. "부모님이 아이를 낳지 못 하게 해주세요."라는 자인의 외침은 심장을 가격한다. 무책임한 부모와 그로 인해 세상에 나온 불쌍한 아이들로 구성된 가족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사실, 이 현실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레바논 등의 국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내에서도 생활고에 시달려 동반자살이나 친족살해를 저지르는 이들의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다.


원고로 나선 자인뿐 아니라, 피고인 부모도 그들만의 사정을 토로한다. 하지만, 그 어떤 눈물겨운 이유도 관객들을 유혹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가버나움>은 아픈 현실을 보여주는 것에만 그치는 영화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예수가 빈자들에게 기적을 행한 폐허를 뜻하는 제목처럼, 고통과 슬픔이 난무하는 현실에서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내포하고 있는 작품이다. 화사한 기적의 꽃 봉우리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분명 사랑과 정(情)의 가치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존재한다.



이 희망의 꽃은 현실에서도 이어졌다. 영화가 공개된 후 세계 구호단체로부터 지원 세례가 이어졌고, 주인공 자인 역을 맡은 자인 알 라피아는 노르웨이에 정착하게 됐다. 또한, 사하르 역을 맡은 하이타 아이잠 역시 유니세프 지원으로 학교에 다니는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모금 이벤트를 통해, 출연진들의 생계에 도움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가버나움>이 깊은 울림을 선사한 또 다른 이유들 중 하나로, 배우진들이 실제 어려움에 처한 현지인들로 구성됐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자인은 실제 베이루트에서 배달 일을 하던 시리아 출신 난민이고, 하이타 아이잠과 자인이 길에서 만났던 소녀는 길거리에서 껌팔이를 하던 소녀들이었다. 라힐 역을 맡은 요르다노스 시프로우 역시 영화와 같은 현실을 살았던 인물이다. 이처럼 비(非)전문 배우들과 함께 촬영된 영화는, 네오리얼리즘을 회고하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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