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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철도원>, 숙명의 업


<철도원>은 철저히 철도원에 집중한 영화다. 제목과 내용 모두가 '한 명의 철도원'에 집중하는 이 작품 속 주인공은 한 평생 숙명적 업에 몸 담은 인물이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오토.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자신의 자리'는 '직업'에 국한된다. 오토는,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직업에 집중한 그는 자신의 가정을 지키는 데는 능숙하지 않다. 단순하고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자신의 직업에 평생을 바친 한 남자의 이야기. 물론, 현대의 아버지상으로는 적합하지 않지만 가정의 경제력을 책임져야만 했던, 그러기 위해서는 직무를 훌륭히 소화해내야만 했던 과거의 아버지상으로는 존경받아 마땅한 캐릭터다.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인 오토. 그로 인해, 아내와 딸 아이를 잃고도 그 슬픔을 뒷전으로 밀어내야만 했던 가장으로서의 역할 부재에 대한 아픔도 그려진다.


이렇듯 <철도원>은 숙명의 업은 완벽히 이행했지만,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한 남자의 삶을 통해 우리네 아버지들의 고충을 풀어낸다.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 지금 시점에서 느낀 것은 '인생은 제로섬게임과도 같다'라는 점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란 존재할 리 없는 법. 그래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상호작용하고, 그들의 이해를 필요로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토 역시, 환생한 딸로 인해 자신이 처한 삶을 이해받았다. 이 코드 덕분에, 차디찬 눈밭 위 외로운 철도원의 일대기를 다룬 이 영화가 한결 따듯할 수 있었다.


<철도원>을 처음 접했던 때는 대학생 신분이었다. 사회를 몰랐고, 직업도 없었으며 직무 이행의 고달픔도 몰랐던 때다. 그때는 '저렇게까지 살아야 할까'라며 오토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현실)에 발 디딘지 10년이 흐른 현 상황에서는 오토의 삶이 어느 정도 이해된다(물론, 그의 직무 이행력만큼 내가 일을 잘 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지만). 이렇듯, 동일한 영화 속 캐릭터의 상황을 언제 접하느냐에 따라 이해도가 달라진다는 점은 늘상 겪어도 흥미로운 영화의 매력들 중 하나임을 <철도원> 재감상을 통해 다시금 느꼈다.


내가 주축이 되는 가정을 꾸리지 않은 현재로서는, 일에 더 집중해야하지 않을까, 라는 반성과 함께 앞으로 가정을 꾸린다면 어떤 아내와 어머니상이 되어야 할까, 라는 상상의 여지를 선사한 <철도원>. 직업(사회 활동)과 가정 내 역할에 대한 고민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통해 뭔가 느끼는 바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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