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영화<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삭막한 도시에서는 사랑이 답이다

빌딩이 강을 가리고, 전깃줄이 하늘을 가리는 도시. 닭장같은 좁은 원룸에 갇혀 햇볕 한 번 제대로 쬐기 힘든 도시. 이렇게 현대인들은 답답한 공간에서 우울, 권태, 고독, 비만 등의 병을 앓고 살아간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의 두 주인공 마틴과 마리아나 역시 이 닭장같은 공간 속 수많은 세입자들 중 일부에 속한다.



외부와의 접촉을 피한 채 컴퓨터로 채팅, 영화 및 음악감상, 작업(일), 공부, 게임 등을 하며 살아가는 웹 디자이너 '마틴'은 7년 전 미국으로 떠난 여자친구와의 이별 후 11평 남짓한 원룸에서 강아지와 함께 살아간다. 건축을 전공했지만 쇼윈도 디스플레이를 하며 살아가는 '마리아나'는 4년 간의 연애를 끝내고 이별의 후유증과 권태 속에서 살아간다. 영화는, 두 인물의 러브스토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 그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그들이 우연찮게 만나게 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즉, 이 영화는 사랑의 방식이나, 성공적인 러브스토리를 배울 수 있는 작품은 아니라는 것.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이 특별한 이유는, 로맨스이지만 결코 로맨스에만 국한된 플롯이 아닌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수많은 고충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외로움에 사무친 이들은 뽁뽁이를 터트리고(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터져버릴 것만 같아서-), 마네킹과 대화를 나누며(심지어 몸의 대화까지-), 우연히 만난 이들과 가벼운 데이트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갈망하는 사랑은 결코 해소되지 않는다.


마리아나가 겪었던 지난 4년 간의 연애에서 남은 사진첩의 사진 폴더량은 햇수에 따라 줄어나가고, 그렇게 이별하는 우리의 모습은 너나할 것 없이 무릎을 치게 만드는 씁쓸한 공감을 던져준다. 한편, 자연스레 멀어져간 마틴의 이별스토리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허무했던 과거를 들추어내게 만든다. 영화는 현실적인 러브스토리와 삭막한 도심의 모습을 냉소적으로 담아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의 짝이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놓치지 않는다.



'도시에서 월리찾기'에 공을 들이는 마리아나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랑의 갈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월리라는 찾아야만 할 대상을 알고도 찾지 못하는 것이 현실인데,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운명의 짝을 찾기란 어디 쉬울 수가 있겠는가! 경제적으로 불안하고 건축물 자체도 불규칙적이며 그것들이 어우러진 도심의 삶은 혼란스러울 정도로 균질력이 떨어지는 곳, 부에노스아이레스. 재미있게도, 짧게나마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다양한 정신적 병을 안고 있으며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모습들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에게서 연민을 느끼고 있는 우리들 역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나의 월리'는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비록 그곳이 '측벽'이라 할지라도 우리 삶에는 마음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게 만드는 '그'가 반드시 있을 것, 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이 우리를 기분좋게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안과 밖의 모호한 경계에 위치한 쇼윈도 속 우리를 발견할 때면 정체성에 대한 생각마저 하게 된다. 훌륭한 통신망으로 이어진 우리들은 과연 행복한걸까. 과연 전깃줄은 우리를 이어주는 매개체일까 분리하는 경계선일까. 영화에서는 사색의 메시지가 담긴 대사들도 다분히 만나볼 수 있다. 꽤나 현학적이면서도 은유와 위트를 놓지 않은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허니와 클로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