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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혼자 있기 좋은 날>

이별과 고독을 통한 성장

성장에는 반드시 고통이 동반된다. 신체 성장에 대한 통증인 '성장통'이라는 단어는, 내면의 성장에서도 쓰여진다. 갓 성인이 된 주인공 지즈는,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가던 곳에서 벗어나 도쿄로 향한다. 관계상으로도, 세대상으로도 거리가 있는 먼 친척 할머니 긴코네 집에 머무르게 되는 지즈. 그녀의 한 해 동안의 에피소드는 '성장' 메시지를 담고 있다.


긴코네 집은, 어린 지즈의 시선에서는 외로움과 이별(죽음)의 장소로 비춰지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사랑과 정으로 가득 들어차 있다. 일과 사랑으로 괴로워하는 지즈와는 달리, 그녀보다 50해를 더 살아온 긴코는 웬만한 일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그야말로 '인생의 베테랑 멘토'다. 너무 많은 걱정을 하는 긴코에게 덤덤한 조언을 하고,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해 서운해하기보다는 당연하다는 듯 표현한다.


"지즈 짱은 생각이 너무 많아. 그러면 안 좋아."

"내가요? 생각이 많긴요. 그냥 그렇게 느껴질 분이에요. 그런 예감이 들 뿐이라고요."

"그런 생각은 미리 당겨서 해 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잖아."

"하지만 어차피 틀렸다는 생각이 들면, 대체로 그렇게 돼요.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자꾸 하게 되고."

"틀에서 불거져 나온 부분이 인간이야. 불거져 나온 부분이 진정한 나지." - p. 115, 116에서


"사람이란 게 참 싫지." "다들 떠나잖아." - p. 128


긴코의 말들은, 체념이라기보다는 철학에 가깝다. 직접적인 경험에 의한 아포리즘…. 그녀와 생활하면서 지즈의 선입견 또한 상당 부분 바뀌어간다. '이 집에서 나갈까? 단호하게 인연을 끊고,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 그래도 거기에서 또다시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겠지. 그리고 문득 정신을 차려 보면, 어느새 또 파국을 맞이하고 있겠지. 그런 의미 따윈 생각하지 않고, 그저 하염없이 되풀이하다 보면 인생도 끝나게 될까. 눈앞에 있는 이 할머니는 과연 그런 과정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을까.' 아직 내딛지 못했던 현실을 알아나가면서 그녀의 보폭과 시야 또한 넓어져나간다. 안주하는 삶이 아닌, 한정된 공간으로부터의 이별에 자유로워지는 셈이다. 한편,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것에 예민하게 굴었던 지즈는 담담해보이지만 지속적인 노년의 로맨스를 통해 사랑에 대한 자세도 배워나간다. 나아가, 지즈는 별다를 것 없어보이지만 자신의 삶 속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긴코를 동경하기도 한다. '나는 과연 이런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일흔 살이 되어도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자기만의 작은 집을 갖고, 밸런타인데이에는 초콜릿을 사러 가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 p. 157'


소설<혼자 있기 좋은 날>은. 느린 풍경 위의 별다를 것 없는 에피소드들을 늘어놓지만 상당한 공감력과 묵직한 메시지를 겸비한 작품이다. 안정된 직장을 바라지만, 안주는 지양하는 현 시대의 젊은이들이 겪는 딜레마, 개인의 주관이나 개성 따위는 존중받지 못하는 세태가 긴코의 집 밖 배경들이다. 그와는 달리, 긴코의 집 안에는 수많은 이별들이 있지만, 동시에 사랑과 정이 깃들어있다. 그 안팎을 오가는 지즈는, 일과 사랑을 경험하면서 한 단계 성장하게 된다. 물론, 성장을 위해 선택된 코드 또한 이별이다. 변화 없는 성장은 없다. 한편, 더 나은 곳으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현재의 자신과는 이별(완전히 달라질 수는 없지만)해야만 한다. 대부분의 성장 코드를 드러내는 작품들에서는, 소설 <데미안>의 메시지가 오버랩되게 마련이다.


이 소설에서 알을 깨고 나온 새는 지즈다. 그녀의 당당하고도 쾌활한 성격을 보자면, 분명 앞날은 창창할테다. 이성친구, 회사동료, 긴코, 심지어 엄마와의 이별까지 경험한 지즈는 굉장히 괜찮은 여성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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