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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커밍 홈>

치유와 성장의 장소, home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한 루. 그녀는 몇 십년 만에 외할머니(프리다)와 재회하게 되고, 할머니댁에서 얼마 기간을 함께 살기로 결정한다. 프리다의 집을 둘러싼 네 명의 인물이 사랑의 공간에서 우정과 가족애, 이성과의 사랑과 소통을 배워가는 과정을 다룬 영화<커밍 홈>은, 가정의 의미에 충실한다.


개인의 삶엔 어느정도 만족하며 살아가지만, 타인과의 소통(직장동료는 물론이거나와 심지어 엄마와도)엔 젬병인 루, 친구들에겐 따돌림을, 엄마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지 못하는 톰, 소소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연주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 다소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헨릭. 그리고 자신의 남편을 잃은 루. 이 네 명의 삶에서는 '상실과 무력함'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프리다의 집에 모여 그들만의 소통망을 형성해나가면서 그들의 결핍(상실과 무력함)은 점차 개선되기 시작한다. 타인의 입장을 좀처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솔직한 의사전달이 특징이었던 루는, 헨릭과의 사랑을, 톰과의 소통을 통해 관계맺는 법을 배워나가고, 헨릭 또한 루와의 사랑을 통해 건조한 삶이 변화되기 시작한다. 한편, 톰 또한 재능 하나 없고 놀림받는 자신을 비관해왔지만 루와 헨릭의 도움으로 자신의 재능과 자존감을 찾아나가기 시작한다. 루 또한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이 상당했겠지만, 사랑을 주고받음으로써 여생의 행복을 채워나간다.



<커밍 홈>….  원제는 가정(Hemma, Home)이지만, 이들의 집에 모인 구성원들은 실질적인 가족(혈육)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영화에서는 혈육보다 강한 사회적 관계를 하나의 끈으로 단단히 묶어낸다. 비단 혈육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는 사랑, 우정, 동료로써의 관계로 맺어진 하나의 '홈' 그 자체일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영화에서는 혈육이 더욱 느슨하게 그려진다. 루와 톰은 그들 엄마들과의 사이가 썩 좋진 않다. 루는 외할머니와 몇 십년 만에 재회했으며, 헨릭 또한 (상세히 설명되진 않지만) 쓸쓸하게 홀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루의 공간에 모여, 끈끈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서로를 위로해주고 개인의 결핍을 치유해나간다.


이 모든 '성장'에는, 프리다의 역할이 컸다. 어쩌면 프리다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인 셈이다. 루와 톰, 헨릭에게 삶의 가르침을 남기고 떠난 그녀…. 그렇게 '홈'의 진정한 의미를 완성해낸 이 가족의 모습을 보며 '진정한 가정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모두가 '성장'하는 장소, 완벽하지 않은 이들이 모여 완벽한 개체는 아니겠지만 행복한 사람이 되게끔 해주는 공간이 바로 '홈' 아닐까. 담담한 스케치로 그려진 영화<커밍 홈>. 인상깊은 작품이었다.


절로 포옹을 부르는 영화,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여겨왔던 가족의 소중함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 가정의 의미를 새겨야 할 가정의 달과 잘 어울리는 이 영화. 포근한 색감과 특유의 북유럽식 유머가 뒤섞인 따스하고도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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