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개인적으로 너무도 좋아해서 지인들에게 꼭 추천하는 영화 '카모메 식당', 이 영화를 하드디스크에 소장하면서 일상에 지쳐 힘듦을 느낄 때면 꺼내어보곤 한다. 영화는 필자에게 있어 몸에 기운이 떨어질 때 찾는 초콜릿 중독증처럼 잃었던 심적 기운을 충전시켜주는 일종의 '에너지 보충제'다. 볼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내가 왜 이 영화에 빠졌을까?'라는 의문에 사로잡히게 된다. 별다른 갈등이 없고 캐릭터들의 입체성도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무미건조하고 한없이 느린' 연출 때문에 이 영화를 계속 찾게 되는 듯하다.
이 '이상하게 중독성 강한' 영화의 동명 원작소설 <카모메 식당>은 영화에서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캐릭터들의 '사연'을 확인할 수 있다. 핀란드 헬싱키에 모이게 된 세 여성, 사치에와 미도리, 마사코의 일본에서의 삶을 각 장마다 소개하면서 그들의 내면 심리를 파악할 수 있도록 '정리'한다. 이 점은 영화 팬들의 간지러웠던 곳을 긁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세 여성의 공통점은 '미혼'이라는 점이다. 결혼이라는 관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들만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신여성의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사치에를 제외한 미도리와 마사코는 꽉 막혔던 삶으로부터의 일탈, 탈출구의 차원에서 핀란드에 발을 디디기도 했지만, 이들 또한 사치에처럼 '진정한 자아를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서게 된다.
<카모메 식당>에는 사치에의 신념에 따라 화려한 겉치레나 이것저것을 한데 모은 퓨전식이 아닌, 소박한 가정식이 판매된다. 일명 '소울푸드(Soul Food)'. 다시 말해, 어머니의 정성이 손맛으로 표현된 메뉴들이 판매된다. 일본 고유의 주먹밥과 된장국, 그리고 간식으로 즐길 수 있는 시나몬롤과 타인을 생각하며 정성껏 내린 핸드드립 커피. 이 단출한 메뉴들만으로도 카모메 식당은 '번창'한다. 번창의 이유에는 과욕 없이 자기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은 데에 있을 것이다.
이 점이 필자가 <카모메 식당>이라는 책(그리고 영화)에 빠지게 된 이유일 테다. 단순한 식당경영에 대한 소재가 아닌,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려는 여성들의 의지, 과욕부리지 않는 삶에서 찾는 의미 등 자기 성장의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는 이 소설은, 사치에 아버지가 늘 입버릇처럼 말했던 '인생 모든 것이 수행'을 온몸으로 실현하듯 인내해내는 캐릭터의 모습들도 인상 깊은 작품이다. 필자 개인에게 있어 '완전 소중한 소울픽션'인 <카모메 식당>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힐링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소설과 영화를 비교하며 보는 것 또한 <카모메 식당>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책에서는 캐릭터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하다고 하면, 영화에서는 핀란드의 여유로운 정경과 살아있는 캐릭터들의 유쾌함이 전하는 재미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소개
잔잔하고 따스함이 전해지는 저자, 무레 요코
일본에서는 '요코 중독'이란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일본 여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작가 무레 요코는 통통 튀는 어투와 재치 있는 문체로 일상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나간 에세이를 주로 선보이고 있다. 1954년 도쿄에서 태어나 일본대학교 예술학부를 졸업하고 1984년 7월, 회사에 다니면서 단행본 <오전 영시의 현미빵>을 발표하고 작가로 데뷔했다. 대표작으로는 <가방에 책만 넣고>, <무인(無印) OL이야기>, <인생 공부>, <소리의 작은 길>, <히라무라 다이코 평전> 등이 있다. 베를린 영화제 수상 감독인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 전 무레 요코에게 이 소설의 집필을 의뢰했고, 완성된 소설을 직접 각색하여 영화로 만들었다고 한다.
책속 밑줄 긋기
"난 잘 지은 밥이랑 채소 절임이랑 된장국만 있으면 아무것도 필요 없어."
"화려하게 담지 않아도 좋아. 소박해도 좋으니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을 만한 식당을 만들고 싶어." (20쪽)
"자연에 둘러싸여 있다고 모두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요. 어디에 살든 어디에 있든 그 사람 하기 나름이니까요. 그 사람이 어떻게 하는가가 문제죠. 반듯한 사람은 어디서도 반듯하고, 엉망인 사람은 어딜 가도 엉망이에요. 분명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사치에는 단언했다. "그렇군요, 주위 탓이 아니라 자기 탓이군요." (148,1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