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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중경삼림>

사랑 역시 '타이밍'

언제 봐도 좋은 영화들이 있다.

왕가위 감독의 로맨스 작품들이 내게는 좋은 영화들에 속한다.

그가 그려내는 사랑의 온갖 감정들이 뒤섞여 있어, 공감하며 감상할 수 있다. 미디어를 보기 위해 작정하지 않아도 공감하고, 나아가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화양연화>고, 다음으로는 <중경삼림>이다. 두 작품 모두 사랑이라는 공통분모를 두고 있지만, 분자는 조금 다르다. 연령대가 다르고 캐릭터들의 상황이 조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작품은 필자에겐 비슷하게 여겨진다. 이유는 공통분모에 있다. 사랑...... 사실, 사랑을 다루는 작품들은 무수하다. 장르가 로맨스에 속하지 않다 할지라도 사랑이라는 코드는 여느 영화에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양연화>와 <중경삼림>이 여느 영화들과 '특별히 다른' 이유는 '시간'이라는 코드에 있다.


두 작품 모두, 시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사랑은 타이밍이다'라는 말을 증명하는 작품들이다. 두 작품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기 때문에, 이것들을 접하는 영화 감상의 타이밍 또한 다르다. 얼마 전, 햇살 가득한 날 따듯한 실내공기를 만끽하며 필자는 <중경삼림>을 감상했다. 그런 날씨와 분위기에는 <화양연화>보다는 <중경삼림>이 제격이었다(나이스 타이밍).


타이밍 때문에 사랑을 놓친, 사랑을 하게 된 청춘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중경삼림>은 사랑에 빠지고 싶도록 만들어주는 작품이다. 연인을 잃은 두 남자가 과거의 사랑을 지워나가는 방법과 새로운 사랑을 맞는 풍경을 그려낸 이 영화는, 낭만 그 자체다. 사랑의 유통기한을 정하고 매일같이 통조림을 사들이는 남자와 젖은 빨래에 자신을 대입시키는 한 남자. 영화를 보며 '정말 저런 남자들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그리움을 소중히 여기는 캐릭터들을 상상하니, 꽤나 로맨틱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찾아든 사랑. 영화의 핵심은 '새로운 사랑'에 있다. 사랑의 유통기한이 있을거라고 (믿고 싶지 않아도)믿을 수밖에 없었던 남자(경찰)는, 그것이 틀렸음을 깨닫게 된다. 영원한 사랑은 보장할 수 없지만, 시간이 걸림돌이 되지 않는 사랑도 존재한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남자. 이 남자로 하여금 <중경삼림>을 보는 이들은 행복함에 사로잡히게 된다.

'사랑의 유통기한이 있다면 나는 만년으로 하고싶다'는 대사는 로맨틱하지만, 현실성에선 다소 벗어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늘 저 대사를 다짐하며 사랑을 시작한다. 유통기한, 이별 등은 생각 말고 현재 진행 중인 사랑에 집중하는 것. 사랑의 양에 한계가 없다면, 길이(시간)에도 한계가 없을거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사랑의 상대를 만났다면, 폐기처리될 통조림 속에 사랑을 가두지 말고 그것을 자유로이 팽창시켜봄은 어떨까. 로맨틱한 영화에 대한 글을 쓰니 괜히 몸도 나른해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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