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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산문집
<나의 소소한 일상>

'인간' 다자이 오사무를 확인할 수 있는 책


필자는 다자이 오사무의 '열혈' 팬이다. <인간 실격>을 읽고 내면의 끓어오를 듯한 흥분을 감추지 못해 '와~ 와!'를 연발했었다. 적잖은 충격을 받았고, 그때부터 지인들에게 <인간 실격>을 강력 추천했었다. 나는 한 명의 작가의 팬이 되면, 작가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모습, 그러니까 가치관과 생활에 대한 극한 관심을 보이곤 한다. 그래서 작가들의 산문집이나 아포리즘 등을 (있다면)찾아본다. 소로우나 루쉰의 산문(아포리즘)집들을 읽었을 때 필자는 그들에게 더욱 짙게 빠져들 수 있었다.


책 <소소한 일상>이 그런 것이다. '인간 다자이 오사무'를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국내에서는 그의 소설들이 인기를 받아왔지만, 다자이의 팬이라면 수필과 그 외 단상들을 꼭 접해보길 권한다. 소설들에서도 드러나지만, 산문집을 접하면 다자이가 얼마나 솔직한 인간이며, 자신은 물론 사회에 대한 날선 시선을 갖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역설적이며 비판적인 그는 (다행히도)특유의 유머도 갖추고 있다. 그래서 그의 단상들에서는 반어와 조롱이 뒤섞인, 읽은 후 되짚어봤을 때 작가가 의도했던 '진짜 뜻'을 간파할 수 있는 것들이 다분하다.


스스로가 소심한 성격임을 자조적으로 고백했던 그. 하지만 그의 비판들을 보면 세상과 등진 사람이 아닐까, 여겨질 정도로 자기주장을 펼쳐낸다. 허영과 노예근성, 도처에 자리잡고 있는 매너리즘에 반대하는 그는 자신만의 시선을 강조함과 동시에 심지어 '작가라면 제멋대로여야 한다'는 주장을 과감하게 펼친다. '문학을 위해 방자하게 구는 것은 좋은 일이다. 사회적으로는 20엔, 30엔짜리 자기 주장도 맘대로 못하면서, 새삼스레 무슨 문학이냐. (제멋대로라는 것)'


한편, 그의 날선 시선은 '현실을 똑바로 주시'한다. '허영의 도시의 자긍심은 그럼 점에 있는 것이다.

이 도시에 모이는 자는 모두 탐식하기가 돼지와 같고, 혈기왕성하기는 비비와 같다. 자기 이익을 챙기는 마음이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보다 강한 곳은 없다. 그런데도 또 헌신, 겸양, 의협을 자랑하고, 봉황과 극락조의 뛰어남, 화려함으로 치장하려는 마음이 이 도시보다 심한 곳도 없다. (허영의 도시)' '농민과 직공의 예술. 나는 그런 것을 본 적이 없다. 샤를르루이 필립. 그만이 나에게 충격을 주었을 뿐이다. 나는 아니, 사람들은 모든 계급의 예술을 포괄하여 예술이라 하는 모양이다. 다음과 같은 말이 성립한다. 그것을 만드는 예술가에게 돈이 있으면 있을수록 좋다. 그렇지 않으면 상술이 남보다 배로 뛰어나(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림 값, 원고료, 남보다 유다르게 비싸게 팔아, 풍요로운 정진을 할지어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이 내린 부자의 상술에 비하면 늘 이류이다. (부르주아 예술의 운명)'


하지만, 그는 '인간적'이기도 하다. 어쩌면 다른 이들보다 더욱 미담을 사랑하는 인간일 수도 있다. '아는 것이 최상은 아니다. 인간의 지혜에는 한계가 있다. 위로는 아무개 씨부터, 아래로는 아무개 씨에 이르기까지 모두 거기서 거기다. 중요한 것은 힘일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그런 일을 안 해도 되는 유복한 몸이었지만,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뭐든지 혼자 했다. 대리석 덩어리를 산에서 마을의 작업장까지 끌어 옮기고, 그렇게 해서 몸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덧붙인다. 미켈란젤로가 사람을 싫어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그토록 싫어했다고 한다. (중요한 것)'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따뜻한 내면도 강조한다. '엄격함과 냉혹함은, 이미 그 뿌리부터 다르다. 엄격함의 근저에는 인간 본여의 따뜻한 배려가 가득하지만, 냉혹함은 싸구려 유리그릇 같아, 거기에서는 꽃 한 송이 피지 않고, 전혀 인연 없는 것들이다. (냉혹함에 대하여)'


필자가, 그의 휴머니즘을 가장 강력하게 느낀 부분은 아래 인용한 소설을 통해서다. 일부를 옮겨본다. '난파하여 몸이 노도에 휩쓸려 해안에 내던져지고 필사적으로 매달린 것이 등대 창가였다. 아이고, 기뻐라, 도움을 청하고자 소리치려고 창 안을 보니, 바야흐로 등대지기 부부와 그 어린 딸이 검소하고도 행복한 저녁식사 중이었다. 아, 안 돼, 생각했따. 나의 처절한 목소리로, 그 단란이 엉망이 될 것을 생각하자 목에서 나오려던 '살려줘요!'라는 소리가 한순간 주저했다. 눈 깜짝할 순간이었다. 갑자기 철썩 파도가 밀려와 그 내성적인 조난자의 몸을 한입에 삼켜 해안에서 멀리 납치해갔다.

이제 살길은 없다.

이 조난자의 아름다운 행위를 도대체 누가 보았을까? 아무도 없다. 등대지기는 아무것도 모르고 단란한 식사를 계속했을 것이고, 조난자는 노도에 시달리며(혹은 눈보라 치는 밤이었는지도 모른다) 혼자 죽어갔던 것이다. 별도 달도 그것을 보지 않았다. 게다가 조난자의 그 아름다운 행위는 엄연한 사실로 전해지고 있다. ('하나의 약속' 중에서)'


가족에 대한 사랑도 한껏 느낄 수 있다. '나의 한 친구가 4~5일 전에 갑자기 죽었는데, 그 일에 대해 조금 쓰겠다. 나는 그 친구를 소중히, 아주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어려운 말이지만, 바람도 맞지 않게 아끼면서 길러왔다. 그랬는데 나한테 한마디 말도 없이, 급사했다. 나는 부끄럽게 생각한다. 내 애정의 부족함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이다. 내 애정에 대한 자만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 친구는 자기 부모에게조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조차도 이렇게 부끄러우니, 그 부모의 부끄러움은, 고통은 어떠할까? 권위를 가지고 명한다. 죽을 만큼 힘든 때에는, 네 어머니에게 말하라. 열 번 말하라. 천 번 말하라. ('숙제 하나, 사소설과 참회' 중에서) '아이에게 차가운 엄마라고 불리는 엄마를 보면, 대개 좋은 엄마다. 어릴 때 고생이, 그 사람에게 나쁜 결과가 되었다는 예는 듣지 못했다. 아무래도 인간은 어릴 때부터 슬픔을 겪어야 하는 존재다. (순진함)' 역시나, 염세주의자이나 무뢰파 문학가였던 그는 '슬픔을 사랑한' 작가다.


끝으로, 작가의 산문집에서 작품에 대한 시선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자기의 작품이 좋을지 나쁠지는 자기가 가장 잘 안다. 천에 하나라도 스스로 좋다고 인정한 작품이 있다면, 고보다 행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각자 자기 마음에 잘 물어볼지어다. (자기 작품의 좋고 나쁨을 남에게 묻는 일에 대하여)' 스스로가 느끼기에 좋은 작품을 써야 한다는 것. 그 작품이라는 것은 다자이에 있어서는 소설이다. 작가라면 소설을 써야 한다, 고 누차 강조하는 글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강조하는 소설의 소재는 무엇일까? 무엇을 써야 할까? '사람은 사람을 구할 수 없다. 정말일까? 뭘 쓸까? 이런 건 어떨까? 사랑은 이 세상에 존재한다. 틀림없이 있다. 찾아지지 않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다. 그 작법이다. ('생각의 패배' 중에서)'


필자가 발췌 소개한 글들은 제법 점잖은 것들이다. 본문을 직접 접한다면 보다 독특하고 창의적이며 비판적인,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시선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아! 이 책을 읽으니, <만년>을 꼭 읽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구매했다. <만년>에 대한 기대를 안고 <소소한 일상>의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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