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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 영화 <새>

새는 과연 아름답기만 한 존재일까?


그리스의 문인, 아리스토파네스에 따르면 새는 까마득한 옛날에는 인간이었다. 새는 하늘과 땅을 오가며 많은 것들을 본다. 그렇기에 새는, 작지만 강한 생물이다.


히치콕의 <새>는, 제목 그대로 '새'에 집중돼 있다. 앵무새를 사기 위해 가게로 들어간 멜라니 대니얼즈. 그는 우연히 변호사인 미치 브레너를 만난다. 미치 브레너는 자신의 어린 여동생의 생일을 맞아 잉꼬 두 마리를 구매하길 원한다. 멜라니는 잉꼬 두 마리를 사서 주말을 틈타 미치의 시골집으로 향한다. 즉흥적이며 할 일 없어 보이는 미치의 행동은, 웬만큼 보수적인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그다지 환대받지 못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새들의 시선에서도 그다지 좋지 않은 모습이다. 다양한 새들이 한 두마리씩 불길한 행동을 시작한다.


깨진 유리잔 같은 새들의 지저귐과 강풍 이상의 펄럭임을 자랑하는 날갯짓. 이것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공포'심을 자극한다. 점점 가혹한 공격이 시작된다. 작고 아름다운 새의 이미지는 삽시간에 잔혹함으로 변모한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인 '새'를 관상하기 위해 새장에 가둔다. 하늘과 땅 모두를 오가야 마땅한 존재들을 작디작은 철창에 가둔다. 자연을 아름답게만 여기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다. 그들은 아름답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다. 많은 이들은 자연을 '경외의 대상'이라 불러왔다. 요즘 들어 부쩍 느끼겠지만, 온갖 자연재해들이 우리를 삼키고 있다. 땅과 하늘의 재해 뿐만 아니라, 새를 포함한 각종 생물들 또한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대상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아야만' 한다.


히치콕의 새들은 열린 세계에서 마침내 힘을 발휘한다. 새파랗던 하늘은 새들로 하여금 이내 먹구름으로 변모한다. 새들이 장악한 하늘은 그야말로 암흑의 공간이다. 새들의 지저귐, 태풍의 조짐과 엇비슷한 새들의 날갯짓 등의 사운드와 흑백의 영상들은 가히 압도적이다. 사실, 이 영화에는 이렇다할 시나리오가 있는 건 아니다. 관객들을 압도하는 영상이 서스펜스를 느끼게 만드는 힘이다.


직접적인 대사 없이도 <새>는 우리들을 반성하게 만든다. 새들이 장악한 작은 마을은 하나의 인간 새장으로 탈바꿈된다. 새장에 갇힌 사람들은 그제서야 자신들이 새에게 얼마나 가혹한 철창생활을 시켰는지 깨닫게 된다. 새들의 공격은 곧, 인간의 이기심이 불러일으킨 파멸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점차 좁은 공간에 갇혀 생을 마감한다. 멜라니가 갇힌 좁디좁은 전화박스는 영화에서 등장하는 가장 좁은 새장이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큰 공포를 느꼈던 장면이다. 멜라니를 공격하는 새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위해 타인과 새 모두를 거부하는 이기심이 극도로 느껴졌던 부분이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라니와 미치네 가족, 그리고 잉꼬 커플은 가혹했던 순간들을 벗어나 다소 평온한 공간으로 떠난다. 인간들의 공간은 새들이 지배한, 그야말로 철저히 새들의 장소가 된다. 이렇게 아찔한 순간들을 통해 우리는 '성찰'하게 된다. 이렇듯 영화 <새>는, 공포와 서스펜스를 넘어,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 반성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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