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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바다의 얼굴 사랑의 얼굴>

바다로든, 사랑으로든, 우리는 어디론가 향하는 여행자다.

2016.09.03. 대난지도에서 읽었다.



이 책은 받아들자마자 '아! 자연 속에서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단순한 생각이 아닌, 구체적인 계획을 불러일으키게 만든 책.


<바다의 얼굴 사랑의 얼굴>이라는 제목이 그 충동을 불러일으켰고, 페이지를 죽 넘겨보면서 충동은 계획으로 이어졌다. 표지 또한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도록 하는 데 큰 몫을 했다. 특히나 색깔이 그랬는데, 표지를 반으로 나눴을 때, 아래는 바다색을, 위는 노을 지기 전 감상할 수 있는 분홍빛 하늘을 떠올리게 만드는 색을 지니고 있다. 바다와 하늘의 공기를 품은 이 책을 안고 나는 바다로 향했다. 한적한 섬으로.


대개, 바다에서 내리면 많은 사람들은 왼편으로 향한다. 그들의 계획 속 장소, 펜션이나 해수욕장이 있는 쪽 말이다. 하지만 나는 섬에 갈 때면 가장 먼저 오른편으로 향한다. 그곳은 사람들로 붐비지 않아서 조용하다. 거친 돌들이 많아서 걷기엔 조금 불편해도, 그걸 감수하면 그 언저리는 온전히 내 구역이 된다. 이날도 사람들은 적었다. 아니, 내가 머무르는 동안 바닷가 앞에는 나 혼자 밖에 없었다. 등대 앞에서 낚시를 즐기는 두 명과 텐트를 치고 야영을 즐기던 일가족이 전부였다. 나는 샌들을 벗고, 의자 역할을 할 만한 바위를 찾아 걸터앉아 책을 꺼냈다. 물론, 책 읽기부터 시작한 건 아니다. 풍광에 매료돼 한참 동안 거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와!'를 되뇌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 바다의 풍광에 대해선 다른 글에서 좀 더 묘사하기로 하고, 책에 대한 글을 적어보겠다.


이 책은 작가 김얀의 에세이다. 제목과 걸맞게 바다와 사랑에 대한 추억이 기반이다. 어린시절, 그녀가 살았던 (경상남도 남해군)미조리에 대한, 그리고 그 위에서 그녀와 함께 생활했던 가족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추억의 공간을 (옛)연인과 함께 찾았던 순간들도 기록돼 있다.


책에는 두 명의 남자가 주로 등장한다. 'ㄷ'과 'J'. 하지만 대부분의 공간은 'ㄷ'이 차지한다. 할로윈데이에 처음 만나 3여 년 간의 만남을 이어온 둘. 그들의 이야기만이 다뤄진 게 아니기에, 연애스토리에 젖어들길 기대했던 독자(물론 나도)들에겐 다소 아쉬움이 있었던 터. 뭐, 타인의 사랑 이야기를 너무 깊이 들여다보길 원하는 것도 과욕이라면 과욕일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자신의 연애담을 꽤 솔직하게 담아낸다. 솔직함의 정서를 느낄 수 있었던 건 'ㄷ'의 환경에 대한 자세한 묘사 때문이다. 'ㄷ'의 가족관계, 그의 취미와 생활, 그리고 그와 작가가 머물렀던 공간들은 사진이나 그림 없이도 머릿속에 충분히 그려졌다. 그 공간을 메우는 둘만의 사랑. 그들의 체온이, 함께했던 순간들의 열정이 활자를 통해 내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내 몸의 감각이 '움찔'하며 반응할 때도 있었고, '나도 사랑하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이는 순간들도 종종 있었다. 침대에 누워 껴안고 있는 것이 그들 생활의 거의 대부분이었다고 하지만, 그보다 즐거운 일은 없었다는 글을 읽는 순간 '아! 내 가방 속 휴지라도 꺼내 내 몸을 덮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사실, 작가를 만나기 이전의 'ㄷ'은 사랑에 대해 염세적이었다. 사랑을 제대로 해본적 없던 그가, TED 창에 'LOVE'라고 검색까지 해봤을 정도이니, 사랑은 사람을 바꿔버릴 정도로 강력한 것인 게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열렬히 서로를 사랑했던 둘은 결국 지금은 다른 관계에 놓여있다. 우리는 평생 이어지는 사랑은 찾기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굳이 그걸 왜 시작해?' 라며 반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해야만 해'라며 대상을 찾고 또 찾는다. 희비가 교차하고, 어쩌면 고통의 순간이 더 많이 경험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을 갈구한다. 세상 그 어디에도 사랑 만큼 아이러니컬한 건 없다, 고 생각하는 나다. 너무나 좋은 것이기에, 그래서 결국 중독될 수밖에 없고, 중독의 끝은 비극과 맞닿아 있다는 걸 알지만 우리는 거기에 재차 빠져든다. 사랑을 하면, 그 대상을 빼고 모두를 잃는 것과 다름 없다는 글. 지독하게 공감했다. 간혹 나는, 연애를 좋아하지만 때론 귀찮아할 때도 있다. 상대를 열렬히 좋아하기에 그만이 내 영혼 속에 깃들어 있다는 걸 자각할 땐, 가끔 슬프기도 했다. 대체 이 사람이 뭐길래 나를 통째로 튀흔드는가? 사랑은 좋은 게 맞는가? 위험한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할 때가 더러 있었다. 그래서 때로는, 사랑에 너무 깊이 빠지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다. 물론,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들과 마주했지만.


'그때 우리에게 왔던 사랑은 한 사람 빼고는 모두 다 잃는 것이었다. 서로를 위한 시간들은 결국 서로를 망치는 시간이 되었다. 160쪽'


'하지만 사랑을 알게 되고 나서는 이 모든 것이 시시해졌다. 그와 껴안고 있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와 떨어져 있으면 격렬한 금단 증상에 빠진 사람처럼 불안하고 괴로웠다. 사랑엔 행복보다 괴로움이 많다는 것을 누가 미리 이야기해주었더라면,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악덕한 마약상 같아 보였다. 평생 사랑만 하고 살기에 우리는 너무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고. 어쩌면 우리는 서로가 먼저 떠나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158쪽'


'우리가 함께 들었던 음악들 역시 이미 우리에게 수없이 경고하였다. Too much love will kill you라고 프레디 머큐리가 노래했고, 에이미 와인하우스 역시 Love is losing game이라고 몇 번이나 되풀이했었다. 159쪽'


제목 중 '바다의 얼굴'에 해당되는 영역은, 작가가 자라온 풍경들이다. 미조리에서의 가난한 생활. 특히나 그의 아버지 이야기들이 많다. '좋은 글이라는 말에 나는 무엇인가에 덴 듯 얼굴이 화끈거려 버스 시간이 촉박하다며 자리를 얼른 피했다. 아빠가 좋은 글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이번 글은 아빠의 가장 어두웠던 시절, 잊고 싶어하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니까. 88쪽' 애증이 서려있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나 또한 회상에 잠겼다. 공감대가 많았기에, 책에 더 깊숙이 빠져들 수 있었다.


책을 읽을수록 주제의식에 대해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이 책, 사랑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사랑하지 말라는 거지? 아니, 하라는 건가?' 재차 자문자답하게 만드는 '혼돈'의 에세이. 이 모호함이 죽 펼쳐진 책이지만, 나는 충분히 공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 내린 결론은, '역시 사랑은 정답이 없군. 하지만 반드시 고통이 따르는군'이다. 우리는 가족과 연인을 사랑하지만, 그만큼 아픔도 견뎌내야만 한다. 그것이 속앓이든, 겉앓이든지간에 어쨌든 고통 없는 사랑은 없는 게 분명하다.


'ㄷ'과 결별 후 새로운 연인 'J'를 만난 작가. 'J'는 어린 나이(당시 열 아홉)에 비해, 성숙한 마인드를 지닌 청년이었다. 그가 뱉았다는 말. 가히 시적이고, 또한 아름다웠다. 'I_you, 나와 당신, 당신과 나. 사랑이라는 말이 없이도 나와 당신만으로 충분한 사이. 나는 우리가 그렇게 되면 좋겠어요.' 정말 이렇게 된다면, 우리는 사랑을 탓하는 오류를 '덜' 범하지 않을까?


작가의 말대로, 그녀가 사랑함으로써 주변의 모든 것들은 의미로 다가왔고 결국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탄생될 수 있었다. 고통을 수반하는 게 사랑이지만, 그렇기에 그것은 성장의 과정인 것이다. 일종의 성장통이다. 온몸으로 공감하며 읽었던 책, 바다의 얼굴과 마주하며 접했기에 더욱 끈끈하게 와닿았던 에세이다. 바다로의 여행을 했으니, 사랑이라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한 책이다.



아차! 이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 '미조리'라는 곳에 가보고 싶다. 사랑하는 '남자'와.




[책 속에서]


바다의 색은 계절마다 다르고 날씨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지만 결국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 17쪽


특별한 향기가 없기 때문에 이런 색이 아니면 벌을 불러들일 수가 없기 때문이라 한다. - 98쪽


잘못된 대상에게 마구 쏘아버린 화살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와 모두 정확히 명중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 109쪽


신기한 경험들이긴 했지만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목표물을 손에 잡아보니 그것은 허무함이라는 얼굴로 나타났다. 책이 나왔다고 해서 당장 살림이 나아지지도 않았다. - 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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