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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랑을 카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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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권함

영화 '비포 시리즈(비포선라이즈-비포선셋-미포미드나잇)'에 열광하는 관객들을 숱하게 만나왔다. <사랑을 카피하다>는 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비포 시리즈 속 제시와 셀린느가 <사랑을 카피하다> 속 주인공들보다 상대적으로 젊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을 카피하다>에서는 연륜의 멋이 있다.


원본과 복제품에 관한 소설《기막힌 복제품》을 쓴 영국 작가 제임스 밀러는 독자강연을 위해 이탈리아 투스카니를 방문한다. 투스카니에서 홀로 아들을 키우며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프랑스 여자와 밀러는 주어진 시간 동안 짧은 관광 데이트를 즐긴다. 그러면서 둘은 '비포 시리즈'의 그들처럼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밀러와 프랑스 여자는 데이트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진짜 부부 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우리들에겐 일종의 역할극이자 복제품으로 여겨지는 그들의 관계와 행동들은 영화의 제목처럼 <사랑을 카피하다>를 그럴싸하게 모사해낸다.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결혼 15년차 부부를 연기하는 그들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노라면, 그들의 관계에 대해 모호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어? 진짜 부부였어?'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 것이다.





복제 부부인 그들의 훌륭한 연기는 원본 그 이상이다. 우리가 그들의 과거, 그러니까 원본의 사랑은 확인할 수 없지만 마치 그들이 진짜 부부였고, 지금은 헤어진 사이라는 착각(혹은 진실)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반대로, 그들은 실제 부부인데 처음 만난 사이처럼 연기했을 수도 있다. 가히 밀러의 주장처럼 '잘 만든 복제품은 원본 그 이상'임이 확연해지는 순간을 만끽하는 그 짜릿함. 이것이 <사랑을 카피하다>만의 매력이다.





사실, '원본과 복제'를 소재로 다뤄온 영화들을 많다. 하지만 <사랑은 카피하다>는 이 철학적 고찰을 로맨스 위에 풀어낸다. 그리고 그것을 상황극으로 만들어 관객이 스스로 보고 사색할 수 있도록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감독의 역량이 두드러진다. <사랑을 카피하다>의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올리브 나무 사이로>, <체리 향기> 등으로 '거장'의 자리를 꿰차고 있는 인물이다. <사랑을 카피하다> 이후로, 사랑의 진실성, 사랑의 실체와 믿음 등에 대한 고찰에 집중하는 듯 보인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 또한 <사랑을 카피하다>와 다르지 않은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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