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영화 <그물>

욕망의 덫에 걸린 남자의 운명


김기덕 감독의 22번째 영화 <그물>은 이전 작품들보다 많이 부드러웠고 보다 친절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김기덕스러움'은 여전하다. 오히려 명확하게 주제의식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많은 관객들이 감독에 대한 편견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도 같다.


김 감독이 일관적으로 표현해왔듯, <그물>에서도 대립된 모든 것들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남과 북. 사회적으로 나뉘어진 경계를 허문 대신, 인간의 본능을 전면에 내세운다.


배가 그물에 걸려 남한으로 넘어간 북한 어부 '철우'. 그는 경계 없는 물 위에서 온전히 자신의 몸을 실을 수 있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왔던 배를 타고 인간이 규정한 경계를 넘나든다. 현재 남과 북은 사회지리학적으로 분리돼 있지만, 그 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본능'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에서 설명되는 본능은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사랑'과 정치·사회적 본능 모두다. 사랑을 '선(善)'에 포함시킨다면, 정치·사회적 본능은 '악(惡)'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표현되는 사랑의 형태는 가족애와 동포애다. 이는, 인도주의적이다. 그에 반해, 정치·사회적 본능의 기저에는 이기심이 깔려있다. 결국, 감독이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건,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다. 확연히 다른 환경을 넘나드는 철우는 결코 사랑을 저버리지 않는다. 물론, 자본주의에 일순간 현혹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애와 동포애(진우에 대한 우정)의 끈을 놓지 않는다.철우가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사랑과 달리, 사회는 그를 배신한다. 정직한 노동, 거짓 없는 순수함은 처참하게 짓밞힌다.


철우가 겪는 남북한에서의 취조는 가혹하다 못해 관객까지 지치게 만들 정도로 모질다. 그를 못살게 구는 이들은 '악에 사로잡혀' 있다. 그 악은 남북 어디에서든 동일하게 진행되는데, 이를 통해 감독은 현 사회의 부조리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남북, 어느곳 하나 저울질의 기울기를 달리하지 않은 채 우리나라(나아가, 세계) 전반에 깔려있는 자본주의의 욕망에 사로잡힌 이기심을 비판한다.



철우는 가족과의 재회에 대한 희망을 품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이기적인 현실 앞에 무너지고 만다. 자본주의의 병폐, 타자를 향한 의심과 경계, 그로 인한 폭력 등에 지쳐버린 그는 더이상 나아갈 곳이 없다. 부인의 젖(생명)조차 제대로 된 구원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결국 그가 택한 것은 자연으로의 회귀이며, 나아가 인간세계의 악에 대한 외침과 '죽음'을 통한 구원이다. 죽음이라는 초월적인 세계로 편입되면서, 완전한 순수성을 희망한다. 감독의 여느 영화에서도 그래왔듯, <그물>에서도 철우가 새 삶을 향해 몸 던진 곳은 물이다.


<그물>은 이기심이 기저에 깔린 현 시대의 병폐를 지적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온갖 악에 걸려버린 한 남자의 삶을 통해, 사회 전반에 걸린 '덫'을 생각해본다.


그동안, 김기덕 감독 작품이 보기 불편해서 꺼려왔다면 <그물>을 시작으로 그의 작품들을 감상해나가는 것을 추천한다. 그의 영화들은 일련의 시리즈 같기 때문에, 작품들을 이어 보면서 '김기덕만의 색'을 발견해나가는 것도 흥미로운 영화 감상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김기덕 감독 영화 특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