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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하나와 미소시루>

훌륭한 엄마이자 부인이었던 '치에'

SNS친구들 중, 유독 나와 취향이 잘 맞는 이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즐겨찾기 목록에 넣어두고, 그들이 읽고 보고 쓰는 생활을 염탐 중이다. 그러면서 얻는 정보들이 많다. 지금 당장 책을 읽고 싶은데 마땅히 떠오르는 책이 없다거나, 현재 내 심정에 걸맞은 영화나 공연 등을 접하고 싶은데 대상을 찾지 못해 고민에 잠겨있을 땐 그들의 '생활'이 내게 큰 영향을 준다. 수많은 SNS의 장단점들이 있다지만, 나는 SNS의 순기능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덕분에 나의 취향에 맞는 소설 한 권과 만날 기회가 생겼다. <하나와 미소시루>라는 일본 소설인데, 읽으면서 '영화로 개봉해도 좋겠다'라고 생각하던 참에 검색해봤더니 다음달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희소식을 접하게 된 것. 영상매체를 접하기 전, 원작소설을 읽게 된다는 건 내 기준에서는 굉장히 즐거운 경험이다.


이 소설은, 8년 간 암 투병을 한 치에라는 여성의 가정사를 다룬다. 싱고는 그녀가 암에 걸렸음을 알고도 결혼했고, 치에는 암 투병 중 목숨을 건 출산을 감행했다. 그렇게 하나가 태어났고, 책은 이들의 이야기를 엮어냈다.


영화<하나와 미소시루> 스틸컷(출처: 네이버 영화)



소설이 더욱 흥미로운 이유는, 실화에 기반된 점이라는 데 있다. 암 투병 중, 자신을 기록하기 위해 치에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현미 생활'이라는 블로그를 개설했고, 책은 이 블로그의 내용을 옮겨냈다. 그 글들에 대해 남편 싱고의 회상이 더해져 있다.


서른 셋이라는 이른 나이에 천국으로 간 치에. 그녀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싱고에게는 강인한 의지를 지닌 부인이었으며, 딸 하나에게는 삶의 지혜를 남기고 간 스승 같은 엄마였다. 힘겨운 암 투병을 이겨내는 여성과 그의 가족들의 삶. 이것 하나만으로도 책은 충분한 감동의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내가 이 책에 더욱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는 책에서 제시된 '식(食)에 대한 태도'에 있다.


출처: 네이버 영화



병에 걸리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음식의 중요성에 대해 치에와 그의 가족이 느끼고 실천해왔던 것들이 담겨있는 책이기에, 독자들은 건강한 삶을 위한 레시피를 덤으로 제공받게 된다. 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치에는 항암제나 서양의학보다 대체의학을 통한 생활 개선에 집중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나의 지인들 중에서도 음식과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암을 완치한 사례가 더러 있다. 그만큼 생활습관, 특히 그 중에서도 음식은 우리의 건강과 직결된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많은 부분을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특히나, 내가 경외하는 스콧·헬렌 니어링 부부, 헨리 데이비드 소로 등의 자연주의자들이 추구했던 식문화와 거의 일맥한다는 데 있어 이 책은 내게 더 깊은 영감을 선사했다.


'먹는 것은 살아가는 것'이라는 주제 아래에, 일물전체(신선한 식재료의 뿌리와 껍질, 수염뿌리까지 전부 먹는 것)와 현미일식 등 재료 본연의 특성을 몸 안에 그대로 옮겨놓는 식습관. 이것에 대한 태도와 실질적인 레시피가 담겨있는 <하나와 미소시루>. 이 소설은, 결코 가볍게 읽혀서는 안 될 책이다. 인간의 삶을 다룬 기록이자, 건강한 삶을 위한 지혜들이 담겨 있는 정보성 짙은 책이다. 자연주의와 죽음에 대한 사색을 고무시킨다는 점에서, 인문학적 요소도 발견할 수 있다.



[책 속에서]


환자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유명한 의사도, 항암제도 아니었다. 암 환자에게는, 암으로부터 살아 돌아온 사람과의 만남이 얼마나 삶에 큰 힘이 되는지 이번에 알게 되었다. -p. 61


늘 '죽음'이란 단어가 머릿속 한편에 있었기 때문에 치에에게는 '웃음'이 필요했다. -p. 153


현재 우리 집의 식탁은 이런 느낌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신선한 식재료를 뿌리와 껍질, 수염뿌리까지 전부 먹습니다. 껍질과 잎이 나 있는 부분은 다른 부분보다 영양이 제일 많습니다. 그 부분을 버리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지요. -p. 122


암에 걸리고, 처음에는 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결국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먹는 것이 몸을 만드는 것이란 것을, 먹는 것이 생명을 만든다는 것을요. -p. 123


사람은 "응애~" 하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걸어갑니다. '죽고 나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은 남겨진 소중한 가족을 굉장히 난처하게 합니다. 삶과 죽음은 언제나 등을 맞대고 있습니다. 자신답게 살아가는 방법과 죽는 방법을 가끔씩은 생각해보게 됩니다. -p. 156


가장 먼저 연구해야만 하는 주제는 '먹는 것은 살아가는 것.'

병에 걸리기 전에는 먹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도 치에도 학생 시절, 생활비가 부족하면 제일 먼저 줄이는 것이 식비였다. 간단하고 편리하고 싼 것만 찾았다. 시판하는 도시락이나 과자, 빵, 즉석식품 등으로 때우는 날이 많았다. '문제는 지금이 아닌, 미래'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 그 결과, 우리는 둘 다 병에 걸렸다. -p. 164


언젠가 치에가 말했다.

"우리는 무엇을 그렇게 서둘며 바쁘게 살고 있는 걸까." 라고.

20대 시절의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삶에서 소중한 것을 얼마나 놓치며 살았던 것일까.

"노후에는 쌀이랑 채소를 지을 땅만 있으면 돼." "돈은 전부 가족의 생명에 투자하자."

언제나 치에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p. 289


하나의 생명이 이 세상에 지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인류는 그렇게 계속 반복해 왔다. -p.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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