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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뤽 고다르 영화 <경멸>

나는 이 사랑의 흐름을 경멸한다

고다르의 <경멸>은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의 또 다른 제목은 <사랑과 경멸>이다. 그에 걸맞게, 영화 속 주인공은 한 커플이다.

영화는 원작의 수많은 장들을 집약해, 짧은 시간동안의 사랑과 경멸을 다룬다. 더할 나위 없이 낭만적인 도입부에는, 고다르의 작가성이 십분 투영돼 있다. 아내 카미유는 자신의 신체 모든 곳을 아릅답냐면서 남편 폴에게 질문한다. 폴의 대답은 '그렇다'다. 둘의 대화는 낭만적으로 보여지는 동시에 다소 형식적인 느낌도 풍긴다.

후에 가면서 밝혀지지만, 사실 이들 부부는 결코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한 것은 아니다. 애정 없이 이어왔던 결혼생활에 대한 회의와 후회는, 둘이 카프리에 가기 전 말다툼을 하는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부부가 서로를 경멸하고 이별 후 파국에 치닫기까지의 과정에는 수많은 이유들이 존재한다. 서로의 애정 전선에 문제 없었다고 느낀 부부는, 한순간에 서로에게 등을 돌린다. 아침까지만 해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폴이 카미유와 함께 영화 제작자 제레미 프로코슈를 만난 이후에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여느 남녀 관계가 그렇듯, 상대가 자신을 경멸하는 이유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 그에 대한 가장 큰 이유는, 진심을 표현하지 못하고 거짓으로 포장하거나 은폐하기 때문이다. 폴은 통역가와, 카미유는 제작자와의 불륜을 저지르지만, 그 사실을 (당연히) 숨긴다. 아이러니한 것은, 각각 벌인 사건에 대해 서로를 의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질투와 의심은 관계의 거리를 넓히는 주 요인임에 틀림없다.

사실, 카미유가 폴을 경멸하는 앞선 이유들 외의 것들도 있다. 바로, 예술가로서의 폴에 대한 존경이 상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폴은 깨닫지 못한다. 한편, 카미유와 제작자의 관계에 대한 폴의 의심과 제작자에 대한 질투 역시 점점 커진다. 따라서 부부의 경멸은 깊어지고 관계는 멀어지게 된다.

사랑은 힘이 되지만, 경멸과 이별은 비극을 초래한다. 고다르의 영화 속 인물들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먹먹함과 애잔함을 느낄 새도 없이 충격적인 사고에 처하고 마는 그들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렇다고 감정을 억누르고 살아갈 수만은 없는 것이 인생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랑이란 달콤하지만 한편으로는 유지하기 힘겨운 감정이다. 특히나, 일방적인 감정이 아닌 관계에 의한 것이기에 어렵다.

사랑에 대해 성찰하게 만들어준 영화 <경멸>. 하지만, 이렇게 학습하고 생각을 반복해도 실전에 맞닥뜨리면 왜 이리도 어려울까. 어찌됐든, 십분 공감하며 감상할 수 있었기에 좋았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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