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 수정>
나와 당신의 이야기
영화 <오! 수정>은 수정을 중심으로 두 남자가 연결된 삼각관계를 다룬다. 수정은 케이블TV 구성작가다. 프로그램 담당 PD인 영수와 그의 후배이자 돈 많은 총각 재훈은 수정을 흠모한다. 두 남자는 각자 수정을 차지(정복)하기 위해 안달이다.
홍상수 감독 영화의 특징은, 사소한 듯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게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재와 상황들은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겪어봤음직한 일상적인 것들이 주를 이루지만, 감독의 손을 거친 후 우리가 만나게 되는 장면들은 생경하기 그지없다.
<오! 수정> 역시 마찬가지다.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삼각 로맨스는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소재다. 소재에 이은 상황들 역시 지극히 일상적이다. 세 명의 인물은 밥 먹고 술 마시고 미술관 나들이를 가는 등 단조로운 일상을 보낸다. 이들의 사랑 방식도 그다지 독특하지 않다. 영수와 수정의 로맨스는 편집실(일터)에서 벌어지고, 수정을 정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재훈의 고군분투 역시 여느 남자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내가 <오! 수정>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 일상성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과거를 들킨 것마냥 눈치를 살피게 됐다는 것(주변에 아무도 없었는데). 나와 이전 애인들의 행각들을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재현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공감도를 갖춘 이 (몹쓸)영화. 홍상수 감독 영화의 매력이자 마력이다. 일상적이고, 그래서 진부할 수 있는 소재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자신만의 확고한 답을 알고 있는 그다.
영화는 총 5부작으로 진행된다.
프롤로그 1부 '하루종일 기다리다'에서 재훈은 몸이 아프다며 오지 않는 수정에게 와달라고 조른다. 정확한 사연을 알 리 없는 관객들은 유추만 가능한 실정이다. 이어지는 2부 '어쩌면 우연'과 4부 '어쩌면 의도'는 수정의 회상신이다. 3부에서는 재훈의 기억들이다. 5부에서 비로소 둘은 결합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영수는 주변 인물이며 로맨스를 이끌어가는 주된 인물은 수정과 재훈이다. 언뜻 보면 로맨틱해보이는 둘의 일상이지만 '알고 보면' 찌질하고도 욕망적인, 또한 지극히 이기적인 개인과 마주하게 된다.
같은 시공간에 있는 두 남녀의 다른 생각. 한마디로 동상이몽이다. 이것이 남녀의, 그리고 개인들이 겪는 보편적인 진리다. 같은 상황들이 반복되지만 미묘하게 달라지는 장면들. 하지만 어느 하나 완전히 똑같은 장면은 만나볼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모순된 기억에 대해 자각하게 된다. 흐트러진 기억은 때로는 시공간의 실체를 모호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쩌면 사랑 또한 실체가 아닌 관념과 감정에 의헌 것이기에 모순과 모호한 것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갈구한다.
이는 굉장히 본능적인 것이다. 밀착과 정복을 원하지만 때로는 의심하는, 멀어졌다 가까워짐을 반복하는 다양하고도 힘겨운 과정을 동반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을 원한다. 그것이 비록 갈등과 허무함을 불러울지라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