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빈티지 카메라 숍을 운영하는 토니는 어느날 한 통의 편지를 전달받는다. 편지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첫사랑 베로니카의 어머니 사라의 부고 소식이다. 부고 소식과 함께 토니에게 전달된 유언장에는 친구 아드리안의 일기장을 전달하겠다는 글이 쓰여있다. 일기장을 찾기 위해 베로니카의 근황을 수소문하기 시작하는 토니. 그는 수소문과 함께 과거로의 회상 여행을 시작한다.


토니가 과거를 털어놓는 대상은 전 부인 마가렛이다. 토니는 자신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이혼 후에야 비로소 털어놓게 된다. 마가렛은 토니의 과거사를 듣는 도중, 자신에게 옛 사랑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은 것에 대한 섭섭함과 아직도 베로니카에 대한 미련이 남은 게 아니냐는 '현실적인' 질문들을 던지기도 한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미스터리와 반전으로 이어지는 영화다.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의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혼란을 마주한 한 남자의 초상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1, 2부로 나뉘어지는 소설의 형식과는 달리,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플래시백 형식으로 펼쳐진다. 중간중간에 비춰지는 기억의 초상들은 관객들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요소로 적용된다.





이 작품의 묘미는 '인물의 내면 묘사'에 있다. 사실, 상황(사건)이나 캐릭터에 있어서는 특출나게 기발한 요소는 발견할 수 없다. 하지만, 일상적인 날들을 보내는 친근한 인물들이기에 관객들에게 전해지는 사색거리는 한층 더 풍부해진다. 동질감. 이것 만큼 공감을 자극하는 요소도 없다.


영화에 등장하는 철학적 사색에 빠진 아드리안, 속을 알 수 없는 오묘한 표정과 모호한 행동을 취하는 베로니카, 짧지만 강렬(미스터리)한 등장을 자아내는 베로니카의 어머니 사라는 영화를 다 본 후에도 찝찝함이 들 만큼 특유의 매력을 갖추고 있다. 한편, 어른이 된 베로니카 역을 맡은 샐롯 램플링의 절제된 연기력 역시 극의 분위기를 북돋워준다.





토니는 지난 40년 동안 자신이 저질렀던 일을 까맣게 잊은 채 살아왔다. 노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전의 삶에 대한 회환에 사로잡힌 그의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반성의 시간을 선사한다. 하지만 그 회한에 대한 반전이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강렬한 작품이라는 것을 입증해준다.


이 작품은 '기억의 한계'에 대해서도 생각케 만든다. 기억의 오류와 그것이 불러일으킨 비극. 지극히 개인적으로 '조작'될 수 있는 기억이 삶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묵직하게 경고하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무모하고 철 없던 시절의 사건이라 해도 그것은 어찌됐건 지울 수 없는 낙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깨닫고 뉘우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인간의 비극'이다. 토니의 모습들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개인의 기억에 사로잡혀 타인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하는 그를 보면서 깨달은 게 있지 않은가.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실상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기억은 온전히, 적어도 자신 안에서는 사실이자 진실이다. 이것은 비극으로 치닫는 길일 수도 있다. 이 작품 속 주인공이 노년의 남성으로 설정된 것을 통해, 보다 이리저리 찢기고 변질된 기억의 오류가 지닌 문제점들을 보다 확고히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스터리 스릴러 <장산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