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허와 실
과연, 나라면 이럴 수 있을까?
영화 <사랑의 시대>를 보며 연거푸 떠올렸던 생각이다. 이 영화 속 캐릭터들 모두는 한 집에 산다. 원제 <The Commune>처럼 한 지붕 아래에서 공동체 생활을 한다.
경위는 이러하다.
건축학과 교수 에릭이 대저택을 상속받았고, 그의 아내 안나는 '공동체 생활'을 제안한다. 그렇게 안나는 자신의 가장 친했던 친구 올레에게 전화를 걸고 그때부터 '공동체 구성원'들이 하나 둘씩 에릭의 저택에 발을 들어놓기 시작한다.
안나는 '왜' 공동체 생활을 제안했을까.
그녀는, 늘 에릭의 말만 듣고 살아야하는 결혼 생활이 권태롭다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을 기회가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던 에릭은 흔쾌히는 아니지만 아내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모인 공동체 구성원들, 그러니까 제 2의 가족 인원은 총 10명(남자 다섯, 여자 다섯)이 된다. 공동체 생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에릭은 저택의 소유권을 공동으로 등기한다. 제 2의 가족들은 모두가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로 몰랐고, 그래서 알아가야만 하는, 살아왔던 환경도 달랐고, 따라서 라이프 스타일도 다른 이들의 동거는 순탄치만은 않지만 어찌됐든 이어져나간다.
식사는 물론이거니와, 함께 술자리를 갖고 여가를 즐기는 등 동거의 시작은 꽤 순탄해 보인다. 안나의 바람대로, 이들이 풍기는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 한 사람이 아프면 모두가 걱정해주고 병원에 데려다주기 위해 애쓴다. 외로운 식사를 해야만 했던 이들은 다양한 음식들을 타인과 함께 나눠먹을 수 있게 됐다. 공동체 생활의 순기능이다. 이로 인해, 안나의 염증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공동체 생활이 순기능만 있는 건 아니다. 역기능도 있게 마련이다. 집세 문제, 물품에 대한 배분 등의 '문제점'이 하나 둘씩 발생하기 시작한다. 공동체 생활이지만 개인의 득실은 다르게 적용된다.
<사랑의 시대>에는 앞선 문제들보다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의 '사건'이다. 바로, 에릭이 외도를 하게 된 것이다. 그의 제자 엠마와 밀회를 즐기던 에릭은 어느날 딸 프레야에게 만남을 들키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안나에게 자신의 외도 사실을 고백한다. 이후, 에릭은 저택을 나가게 된다. 하지만 이런 에릭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안나는 에릭에게 엠마와 함께 집으로 들어올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엠마도 공동체 구성원들 중 한 명이 된다.
하지만, '역시나' 이 과정은 순탄치 않다. 이성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할 것만 같았던 내연녀와의 동거. 하지만, 감정이 그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대인배, 쿨한 스타일로 보였던 안나는 엠마가 들어온 이후부터 잠 한숨 제대로 들지 못한다. 결국, 약과 술에 의존하기를 일삼던 그녀는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해 직장에서 쫓겨나고 만다.
'잘 나가던' 한 중년 여인의 삶이 나락으로 치닫고 말았다. 이 상황에서 안나는 과연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공동체 생활은 안나가 제안한 것이고 엠마와의 동거 역시 그녀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망가지고 말았다. 물론, 에릭의 외도 자체가 모든 것의 원인일 수 있겠다. 에릭의 외도가 없었다면 안나의 삶은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반대로, 공동체 생활의 주도권을 쥔 셈인, 그로 인해 자신이 지향하던 삶을 되찾아가던 안나로부터 소외를 느끼던 에릭에 대한 연민 또한 지울 수 없다. 어쩌면 에릭이 외도를 하게 된 원인에는 공동체 생활에 대한 불만족도 포함됐을 테니까.
그렇다면, 안나의 기획으로 시작된 공동체 생활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건강한 공동체(집단)는 건강한 심신을 갖춘 개인으로 구성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말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리라 본다. 공동체를 '해치는' 인물은 퇴출되어야 함이 마땅한데, 이 영화에서는 그 인물로 안나가 '지목'된다. 그것도 딸 프레야에 의해. 프레야의 대담한 결정은, 건강하지 못한 한 명이 공동체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사랑의 시대>가 그려낸 한 지붕 아래의 공동체는 우리 사회의 집결체라 보면 되겠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면서, 화합과 다툼을 오가며 개인의 삶을 영위하는 개인들의 모임. 개인의 욕망이 들끓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다분히 반영해낸 영화인 만큼 '지나치게 솔직하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은 실제로 공동체 생활의 유경험자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 다큐멘터리 같은 인상을 받기도 했다(마치 누군가의 경험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 배어있다). 흥미로운 영화였다. 개인적으로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영화들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이번 영화는 제 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을 거머쥔 '트린 디어홈'의 연기력 때문에 더 깊이 젖어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