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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과자책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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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시작

감귤 파이


 손꼽아 기다리던 여행! 연달아 잡힌 지방 공연 때문에 집을 너무 오래 비우는 것이 마음에 쓰였는지 곧 있을 제주 공연에 함께 가자는 남편의 말을 덥석 물었다. 남편은 공연 일정 때문에 우리보다 이틀 먼저 떠나고 나랑 두루 둘이 뒤따라가기로 했다.     


 “엄마 우리 몇 밤 자면 제주도에 간다고?”


 두루도 이번 여행이 기다려지는지 떠나기 며칠 전부터 똑같은 질문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되물었다. 평소 같으면 그만 좀 물어보면 안 되겠냐고 퉁을 줬겠지만 나 역시 기대감에 부풀어서인지 두루의 질문에 신나는 박자까지 붙여가며 대답해 주었다.      


 “오 두 밤! 예 두 밤!”     



 

 작년에 이어 두루와 함께 하는 두 번째 제주 여행. 10월의 제주는 정말 따뜻했고,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모처럼 우리 셋이 꼭 붙어 다니는, 그야말로 함께해서 즐거운 여행이었다.

 그중 ‘브릭 캠퍼스’라는 곳이 기억에 남는다. 평소 레고 조립이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두루에게 이곳은  출발하기 전부터 손꼽아 기다리던 곳이었다. 역시나 두루는 도착 하자마자 물 만난 고기처럼 쏘다녔다. 우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리는 아이를 쫓아다니느라 바빴고, 그래도 이곳에 온 것을 남겨야 하지 않겠나 싶어 블록으로 만든 커다란 조형물 앞에 서보라고 몇 번을 애걸복걸해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나는 브릭 아티스트의 작품을 전시한 곳에서 멈춰 섰는데, 그 작품이 너무나 훌륭해서 대충 훑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남편에게 두루를 부탁하고 작품에 대한 설명을 꼼꼼히 읽어가며 한참을 둘러보았다. 마음속으로 그리던 소망을 작은 블록 조각을 이용해 완성한 작품은 과연 ‘아티스트’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을 만큼의 명작이었다. 옛날 같았으면 장난감으로 무슨 예술을 하고, 그걸 직업이라고 하겠냐는 말도 들었을 법한 ‘브릭 아티스트’ 세상이 달라졌음을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것은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고, 동시에 이 브릭 아티스트의 부모님들은 어떤 분이실까? 하고 궁금해졌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자’는 것이 거의 좌우명에 가까운 우리 부부는 그 말에 얼마나 큰 어려움이 뒤따르는지 잘 알고 있다. 그것은 곧, 타인의 시선과 상관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족의 사랑과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해주는 것도 좋겠지만 돈이 많다고 해서 뭐든지 다 해줄 생각은 없고, 그것은 반드시 한계가 있다. 내 아이가 자신을 믿고 좋아하는 일에 과감히 도전할 수 있도록 깊은 사랑과 무한한 신뢰를 보내 줘야겠다고 이날의 경험을 통해 다짐해본다.


 집에 돌아와 남편과 함께 이번 여행에서 느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득, 앞으로 펼쳐질 두루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한 부모로서의 긴 여행을 시작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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