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땅따코 Mar 30. 2021

당신 근처의 신비한 그곳

머리를 잘랐다.

잘려나가는 머리카락들을 보니 속이 시원했다.

끝이 갈라지고 탈색되어 신경에 거슬렸던 것들을 잘라내니 개운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미용사의 손은 단호하고 거침없었다.

그의 계산대로 내 머리가 짧아지는 것이 불안하면서도 즐거웠다. 어깨에 두른 하얀 면포 위로 검은 머리카락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잘려나가는 머리카락들을 보며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안해졌다. 가만히 앉아 미용사가 완성시켜줄 나의 모습을 기다리는 일이 좋았다.  


요 며칠, 머리도 몸도 쉼 없이 움직였다. 상황에 굴복하지 못하고 불어나는 생각들을 부러 억누르려 노력한 날들이었다. 잠깐의 틈이 생겼을 때, 나는 머리를 잘라야겠다는 충동에 미용실로 향했다. 


마음 놓고 두 손 놓고 있는 일. 미용실에 가 머리를 자르는 일은 그런 일이다. 아마 몇 안 되는,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 중 하나. 남에게 마음 놓고 부탁할 수 있는, 오히려 그게 자연스러운 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저는 이런 걸 원해요. 이렇게 해주세요" 

미용실 의자에 앉은 이상, 머리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저 축 늘어져 결과가 내 마음에 꼭 들기를 바라는 일뿐이다.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은 줄곧 미용실로 향하는지 모른다. 실연 혹은 실패와 같이 내가 부단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그저 원하는 것을 말하기만 해도 그 결과를 눈으로 보여줄 미용사가 있는 곳을 찾는 것이다. 


미용실에서는 예뻐지기 위해서든, 미련을 잘라내기 위해서든, 내 손을 들이지 않아도 모든 것이 쉽게 싹둑싹둑 잘려나간다. 금방 금방 예뻐진다. 


일상에 숨이 가쁘다면 지금 근처의 미용실에 들어가 보시라. 미용실은 당신의 생각보다 더 신비한 곳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뚫린 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