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잘랐다.
잘려나가는 머리카락들을 보니 속이 시원했다.
끝이 갈라지고 탈색되어 신경에 거슬렸던 것들을 잘라내니 개운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미용사의 손은 단호하고 거침없었다.
그의 계산대로 내 머리가 짧아지는 것이 불안하면서도 즐거웠다. 어깨에 두른 하얀 면포 위로 검은 머리카락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잘려나가는 머리카락들을 보며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안해졌다. 가만히 앉아 미용사가 완성시켜줄 나의 모습을 기다리는 일이 좋았다.
요 며칠, 머리도 몸도 쉼 없이 움직였다. 상황에 굴복하지 못하고 불어나는 생각들을 부러 억누르려 노력한 날들이었다. 잠깐의 틈이 생겼을 때, 나는 머리를 잘라야겠다는 충동에 미용실로 향했다.
마음 놓고 두 손 놓고 있는 일. 미용실에 가 머리를 자르는 일은 그런 일이다. 아마 몇 안 되는,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 중 하나. 남에게 마음 놓고 부탁할 수 있는, 오히려 그게 자연스러운 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저는 이런 걸 원해요. 이렇게 해주세요"
미용실 의자에 앉은 이상, 머리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저 축 늘어져 결과가 내 마음에 꼭 들기를 바라는 일뿐이다.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은 줄곧 미용실로 향하는지 모른다. 실연 혹은 실패와 같이 내가 부단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그저 원하는 것을 말하기만 해도 그 결과를 눈으로 보여줄 미용사가 있는 곳을 찾는 것이다.
미용실에서는 예뻐지기 위해서든, 미련을 잘라내기 위해서든, 내 손을 들이지 않아도 모든 것이 쉽게 싹둑싹둑 잘려나간다. 금방 금방 예뻐진다.
일상에 숨이 가쁘다면 지금 근처의 미용실에 들어가 보시라. 미용실은 당신의 생각보다 더 신비한 곳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