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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따코 Apr 28. 2021

고장 난 문짝

원룸에 입주할 당시 옵션이었던 붙박이장이 늘 말썽이다.

미닫이 문짝인데 조금만 압력을 가해도 툭, 하고 레일을 탈선해버린다.

혼자 커다란 문짝을 올렸다 당겼다 낑낑거리다 결국 관리실에 수리를 요청한 게 벌써 몇 번이다.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무심히 기댔다가, 또 탈선해버린 문짝.

이제는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반만 열린 채 닫히지도 열리지도 않는 문짝을 몇 주 째 그대로 방치했다.


그러나 이 좁은 원룸에서 김치찌개라도 끓일라 치면 열린 문틈 사이로 찌개 냄새가 옷 섬유 알알이 박히는 것 같은 찝찝한 기분에 결국 다시 관리에 전화를 걸었다.


이제는 낯이 익은 기사님이 몇 주째 고장 난 문짝을 우그덕우그덕, 힘으로 감으로 밀어 넣어 고치는데 마치 구세주 같았다.  

덜컹, 하고 문짝이 정상궤도로 올랐음을 감지하는 소리와 함께 스르르, 거짓말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는 문짝.

잘 맞물려 굳게 닫힌 붙박이장의 하얀 문은 집을 마치 새 것처럼 보이게 했다.


다른 세대들의 문짝도 비슷한 사정인지 이미 여러 집 문짝을 들어 올리고 온 듯한 기사님에게 끓여 냉장해 둔 현미물을 컵에 따라 드렸다. 이마에 땀이 맺힌 채 컵에 가득한  물을 꿀떡꿀떡 무엇보다 달게 마시는 기사님.

물을 끓여 놓길 잘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다.


고쳐진 문짝을 보니, 너무 좋다. 조심스럽게 열고 닫아 보기도 한다.  

특별한 공구가 필요했던 것도 아니고, 기술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지만

나는 못 고치고 기사님은 고칠 수 있던 문짝이 고쳐져서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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