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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따코 May 13. 2021

나를 망치는, 나를 살리는

오랜만에 휴일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속해있을 땐 꿀만 같을 줄 알았던 휴식이 곤혹이었다.

간만에 시킨 배달음식의 자극적인 맛과 보상심리로 인한 폭식은 내내 속을 더부룩하게 했다. 침대와 책상에서 일어날 때마다 내 몸의 방향과 속도를 가늠할 겨를 없이 움직일 땐 눈치채지 못했던 굽은 목과 틀어진 골반의 아우성을 느껴야 했다.
영화를 보기도, 음악을 듣기도, 책을 읽기도, 사람을 만나기도 싫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다.

백색소음만이 귓가에 웃도는 정적이 지속되는 30초의 시간이 30분처럼 느껴져 금방 고개를 털고 "아, 아"하고 목소리를 내보았다. 고요함 중에 들리는 내 목소리도 낯설었다.

일상이란 것이 지독한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지독할 줄이야. 일종의 중독인가. 일상에서 미친 듯이 벗어나고 싶지만 결국 일상에서 벗어나는 순간, 몸도 마음도 관성에 저항하는 듯 편하지 않다. 묵혀둔 혹은 미뤄둔, 일상에 희석시켰던 각종 걱정 근심 불안이 까맣게 돌돌 말린 먼지뭉치처럼 머릿속을 굴러다다. 제대로 돌보지 않은 방안에 실제로 굴러다니는 먼지 덩어리는 덤.

일상은 그와 같다. 생활이면서 도피처와 같다. 도피해야 할 일상이 아니라, 늘 일상으로 도망치고자 했던 건 아닐까. 그것은 쉽게 생각을 멈추고 몸을 움직일 수 있게 하니까. 늘 똑같은 일상에 치여 사는 것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지만 일종의 강압 없이는 제 삶을 온전히 유지하기 힘들다.

일상이란 싫지만 필요한 것이었고, 굴복하고 싶지 않지만 절대복종해 왔던 것이었다. 일상에 무릎을 꿇어버릴 때, 일상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인정하기 싫어도 삶에 대한 일말의 증오, 그것이 나를 살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의 원천이던 것이다.

이토록슬픈EURE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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