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주쟁이가 말한 것 중 있다는 것은 그런대로 있는 것 같았고, 없는 것은 어쩐지 없는 것 같았다. 있다니 있는 것이고, 없다니 없는가 보다 그렇게 되었다.
나는 어떤 것을 가졌고, 어떤 것을 가지지 못했나. 간절히 가지고 싶었으나, 가지지 못했던 것들이 그 얼마나 많았나. 가지고 싶다는 열망도 전에 이미 나에게 주어졌던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었나 지나온 날을 돌아본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동안, 나는 더 가지지 못해, 덜 가지지 못해 늘 애달파 하고, 부러워하고, 무기력해 한다. 결핍의 감정이 동력이 되지 못하는 인간은 주어진 결핍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무한할 결핍에 파묻혀 나를 핥고 또 핥는다. 상처에 딱지가 얹으면 다시 뜯고 뜯어 새살에 맺히는 붉은 핏방울을 보고야 만다.
그것은 아주 멍청한 짓이다. 치유할 길을 몰라, 계속 생채기를 내는 것. 나의 생채기에 집착하며 용납하지 못하는 것. 그 생채기를 기어이 흉터로 남겨, 남에게 보이는 것.
누군가 말했다. 두려움을 모르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그것을 알고 극복하는 것이 용기다.
어쨌든 늘 ‘앎’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알고 나서야 기쁨이든 슬픔이든 맞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 ‘무지’의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불가항력을 느낀다. 알아가는 과정이 죽도록 싫은 어린아이는 오늘도 하루를 일 분씩, 한 시간씩 뭉치고 뭉쳐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
동경했던 것들, 꽤나 은밀했던 야욕들. 당신이 있어 좋다. 당신이 없어 슬프다. 당신을 만나 기쁘다. 당신이 보고 싶다. 이루고 싶다. 갖고 싶다. 오르고 싶다. 해내고 싶다. 그따위의 감정은 아랫배 언저리에서 맴돌 뿐이다. 묵혀지다가 언젠가 하찮게 배설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 아무것도 모른 채로 있는 것. 그것은 죄일까. 그것은 나태이고 자만일까. 그것은 유기이고, 방관일까. 그것은 회피이고 비겁한 것일까. 그것은 민폐이고, 무의미한 것일까. 그것은 이기적이고 게으른 것일까.
나의 질문에 내가 답하는 일에도 싫증이 난다.
이제는 나를 움직이게 할 동력을 과연 어디서 끌어와야 하는가를 고민해봐야 한다. 내 안에서 찾기는 그른 것 같으니 저 밖에서 찾아야겠는데, 이건 뭐. 한반도 가운데에서 시추라도 하듯 깊고 깊은 땅굴을 계속 파야 한다. 그래서 이 일이 지겨운 거다. 어차피 없을 걸 다 아니까. 다 알면서 사람들은 왜 그렇게들 땅굴을 파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