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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따코 Jul 22. 2021

지구와 달의 거리

 서울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경기도의 위쪽에 작게 위치한 나의 고향은 아주 급격한 개발을 겪는 도시였다. 나 어릴 적만 해도 색이 몹시 바랜 페인트가 칠해진 주공아파트와 빨간 벽돌로 세워진 빌라들로 가득했다. 집집마다 가시가 인 목재 문패와 구리선이 밖으로 삐져나온 초인종들이 붙어있었고, ‘어름 있읍니다’와 같은 붓으로 쓴 간판들이 빈번이 눈에 띄던 그런 곳이었다.

 나의 고장은 급격한 개발을 겪어내느라, 사시사철 24시간 ‘공사 중’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나의 옆집, 학교 근처의 건물들이 허물려 있었고 내가 밟고 지나던 보도들은 갈아엎어지고 있었다. 지하철을 뚫는다며, 늘 높다란 장막들이 여기저기에 쳐져 있었다. 친구들이 살던 집들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는 브랜드 아파트들이 차례대로 들어섰다. 그만큼 떠나는 이도 참 많은 동네였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서울의 첫 이미지는 의외로 푸르렀다. 서울 땅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공사 분진 냄새, 매연냄새가 아닌 풀냄새 흙냄새가 진하게 풍겼던 기억이 있다. 듣던 대로 회색도시가 아닌, 울창한 가로수들이 이렇게 많이 서있을 수 있는, 넓은 공원들이 자리할 수 있는 초록의 도시처럼 느껴졌었다.

 처음으로 뮤지컬이라는 것을 보겠다고 서울에 왔다가 월드컵 공원이란 곳을 가보았을 때 그 광활한 잔디밭 앞에서 넋을 잃은 기억이 있다. 사람들이 잔디밭에 누워 책을 읽고 생전 보지 못한 품종견들이 편한 옷을 입은 주인의 목줄에 메어 산책하는 모습이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곳에 실재했 었구나 했다. 그 순간, 갖고 있던 것 중 가장 예쁜 옷을 골라 입고 온 자신이 초라해졌었다.


 그 자연스러움, 그 여유에 박탈감을 느꼈다. 한강에 갔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 여의나루에서 그 넓고 푸른 강을 보자마자, 볕이 들지 않는 시장 안 가게에서 일하고 있을 부모님이 떠오른 건 지극한 효심 때문은 아니었다. 자연에 가까이 산다는 것, 그것이 바로 특권이고 계급이구나. 회색 중에 푸름과 초록을 눈에 담는 것이 나의 부모에겐 아주 어려운 일인데 누군가에겐 이처럼 쉬웠구나. 이 세상의 계급이란 것을 눈으로 확인한 경험이었다.


 우리 집 앞엔 은행나무가 있었다. 우리 가족이 그 집에 살기 전부터 그 골목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나무였다. 골목 안에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각 암놈 수놈이라 튼실한 은행이 알알이 열렸었다. 아침마다 잘 잤냐, 더 컸냐 인사를 건네던 가족이었다. 은연중에 우리 집을 지키는 수호신이라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옆 집 은행나무는 은행이 떨어져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뽑혔고, 남은 건 우리 집 한 그루였다. 짝을 잃어버린 은행나무는 그 후로 자주 병이 들고 시들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구청 직원들이 왔다. 우리 집 나무를 뽑겠다 했다. 은행나무의 뿌리가 옆집 담벼락으로 파고들어 금을 내린다는 이유였다. 옆집 주인이 민원을 넣은 모양이었다.

 우리 가족은 그 은행나무를 지키기 위한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아주 오래된 나무다. 그래도 나무를 함부로 파면 안 되지 않느냐. 자식들의 등쌀에 밀려 아버지가 몇 마디 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구청 직원들은 민원이 들어온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며 무시무시한 톱으로 우리 집 은행나무를 뿌리째 뽑아냈다. 아마 1시간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무가 뽑히고, 조각나는 동안 아빠는 줄담배를 피워대고, 나와 오빠는 차마 그것을 지켜볼 수 없어, 주먹을 쥐고 눈을 감았었다. 나무 위에 올라가 안 된다고 시위라도 했어야 했나, 무력한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서울의 나무는 왠지 더 울창하고, 자신에게 허락된 공간만큼 더 깊게 뿌리를 내리고 더 넓게 가지를 친다. 그 광활한 영토를 개발시키지 않고 정갈히 조경시켜놓는 것. 땅을 파지 않고, 신호등을 세우지 않고, 보도블록을 깔지 않는 것. 누군가의 민원으로 손쉽게 처리되지 않는 것. 그렇게 지키는 힘. 그 힘을 나는 왜 가지지 못했을까. 그 나무를 왜 지키지 못했을까. 그들은 나의 가족, 나의 친구들과 무엇이 그렇게 다른가. 돈이라는 것이 수여하는 여유를 그들은 어떤 수단으로써 획득했을까. 끝에 닿을 수 없는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자연을 누린다는 일이 아주 사치스러운 것이 되어버린 지금이다. 사방으로 통하고, 강에 더 가까이 있을수록, 더 큰 공원이 있고, 아침에 조깅을 할 수 있는 잘 닦인 산책로가 있는 산자락이라면, 큰 창으로 산이 보이고 물이 보인다면 더더욱 비싸진다. 지하철로 갈 수 있는 거리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의 차이가 지구와 달의 간격처럼 느껴진다. 도무지 닿을 수 없는 곳이라 여겨진다. 나는 월드컵 공원 한가운데에 서서, 다시 한번 이 서울특별시 마포구 가운데에 서서 익숙한 괴리를 느낀다. 무엇이 다른가. 무엇이 나를 여기에 그들을 저기에서 걷게 하는가.


 비를 맞아 짙어진 잔디의 냄새가 장사를 끝내고 세내던 부모님의 때 묻고 눅눅한 돈다발의 냄새와 같게 느껴진다. 이 모든 것이 당연한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이 내 안에서 맞닿아지며  미미한  충격을 인다. 금을 내린다. 판판한 모래밭에 잡초가 무성히 자라던 공터에서 공을 차고, 자전거를 배우고, 오래달리기를 하던 나의 유년이, 한 번 넘어지면 무릎부터 손까지 검붉게 피딱지가 지던 그곳이, 이곳의 눈부시게 파란 잔디보다 뭐가 그리 못했던가. 나는 왜 이따위 것에 선망 혹은 열등감을 느끼게 되는 것인가. 오늘도 역시 답은 찾지 못한다.

 잔디를 밟으며 빼곡히 자라난 잔디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잔디밭을 밟고 있는 내가 내가 아니고, 밟히는 잔디가 나인 것 같아서. 그쪽에 이입하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해서. 그래서 나는 다시 흙길로 걷는다. 잔디에 누운 사람들을 등지고 걷는다. 그 아득한 간극에서 달아나, 나의 평온한 곳을 찾으려 무거워진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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