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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따코 Sep 23. 2021

부정의 긍정

재작년, 글 쓰는 걸 직업으로 삼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되어 떼부자가 되어보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처음으로 인정해 본 것이었다. 부끄럽고 두려워서 좀처럼 인정하기 싫은 마음이었다. 막상 인정해버리고 나서는 의외로 기분이 가벼워졌었다. 가슴속에서 가능성이 용솟음쳤고 다시금 ‘꿈’이라는 것이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래서 결국 주체할 수 없는 그 마음을 친구에게 털어놨었다.


“나 작가가 되고 싶어”

“안 돼”


매사에 그리 단호한 적이 없는 친구였기에 숨도 쉬지 않고 튀어나온 그 답에 도리어 당황했었다. 그 친구는 한강이 꺼져라 한숨을 푹 쉬더니 나에게 ‘꿈 깨’라는 말을 어떻게 완곡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골몰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조금은 슬퍼졌었다. 우리가 어느새  서로를 마냥 응원해볼 수 있는 순수한 시점에서는 멀어졌구나. 아직도 자신만은 옛 시절에 멈춘 것 같다 입버릇처럼 말했어도 결국 우리는 어른이 됐구나.


오히려 그 지점에서 그 친구의 진정성이 느껴진 것도 사실이었다. 부정적인 견해를 제시하는 것은 무언가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니까. 돌아왔던 말이 무성의한 응원이었다면 더 상처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진짜 생각해서, 그래 그런 선택을 하는 일이 누가 봐도 쉬운 길은 아니어서 뜨거운 주전자에 손을 데려는 아이의 손을 반사적으로 쳐내는 것처럼, 안 된다는 말이 그렇게 튀어나와버렸을 것이다. 서로의 마음을 알기에 우리 둘은 그냥 말없이 애먼 한강만 바라보았다.




그래도 글을 써보겠다고 작년에는 작가 아카데미에 다녔다. 70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수강료를 내고 면접까지 보고 들어간 곳이었다. 수강기간이 끝날 때까지 70분 분량의 단막극을 완성하는 것이 숙제였다. 나는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분명 미숙한 글이었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분명 있는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나조차 모르겠는 그런 글이었다.


마지막 발표 날, 내 글은 수업용 인터넷 카페에 돌려졌고 나는 강의실 앞에 서서 피드백을 받아야 했다. 다른 수강생들에 비해 나이가 어렸던 나는 주눅이 들어있었고, 내 글을 누군가에게 보인 경험이 많이 없었기에 의기소침해져 있기도 했다.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을 말하고 주인공이 다 때려 부수는 것을 결말로 하겠다는 패기 찬 포부를 밝혔다. 답답한 마음에 무엇이든 때려 부수고 싶다는 당시의 정서가 반영된 캐릭터 설정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당연히 혹평이 이어졌고 수업을 주관하는 작가님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가 그렇게 화가 나? 00 씨는 화나는 일이 많나 봐~”


그 순간 화가 치밀었다.

‘화나는 일이 왜 없어? 이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가며 작가라는 사람이 화나는 일이 없으면 그게 문제 아니야?’ 반박의 말들이 폭포수처럼 떠올랐지만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얼굴만 붉힌 채 우물쭈물, 웃지도 울지도 못한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말았다.


마지막 수업 날, 강의를 진행했던 작가님은 어린애들은 감히 글을 쓰겠다 엄두도 내지 말라는 엄포를 놓았고, 나는 짐을 챙겨 도망치듯 그 강의실을 빠져나왔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쓴다는 것에 내가 재능이 있는 걸까. 내가 쓰는 것에 대해 얼마만큼의 책임감과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걸까. 나의 글이 결국 경제적인 가치로 환원될 수 있을까. 나는 이 지옥 같은 피드백을 매 순간 견뎌낼 수 있을까.


그 말이 아직도 가슴에 꽂힌다. 무엇이 그렇게 화가 나느냐고. 그때는 그것을 모르는 저 사람에게 화가 났었다. 그러나 지금은 분노의 대상이 무엇인지 정확히 하지 못했고 그 감정을 공감시키지 못한 내 글의 문제였다는 것을 안다. 알아서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는 명백한 명제를 왜 항상 간과하고 기대하는 것일까. 글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활자이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것은 오로지 쓰는 이의 역량이다. 어떤 비평을 쏟아내든 그것은 독자의 자유이고 언제나 귀책사유는 글쓴이에게 존재한다.


무엇을 해도 박수를 쳐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은 없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조차 무조건적으로 나를 긍정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며,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때의 강의실에서 수치스럽게 호명되었던 ‘애’로 취급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피드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 그것이 내가 가장 혐오하던 인간이 아니던가.


그래서 결론은 부정을 긍정해보는 힘. 지금 나에게 그것이 필요하다. 부정을 부정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부정에 동력을 달아 긍정으로 전환시키는 힘. 비수처럼 꽂혔던 말들. 각인처럼 남아버린 순간들. 그것은 상처가 아닌 냄새나는 거름이었다 쳐버리는 것. 좋은 거름일수록 냄새는 지독하다. 그 지독한 것들이 내 자양분이 되게 하여 향기 나는 꽃과 꿀 같은 열매를 맺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후엔 그 공은 다 내가 차지하리.


아카데미 면접 본 날, 떨어진 줄 알고 선유도 공원 가서 혼자 눈물을 훔쳤었다. 사실 눈물은 안 났다.

물 색깔이 처음 보는 짙은 푸른색이라 괜히 더 심란했던 기억. 감정이 기억이 되면 꽤 머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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