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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따코 Jan 12. 2021

추억 저장하다 추억에 깔려 죽겠네

방청소를 했다.

약 5살 언저리부터 그렸던 그림들,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썼던 스케치북, 초등학교 때 모았던 고무찰흙, 딱지에, 미술시간에 만든 해괴한 가면, 클리어 파일 몇 권을 채운 상장, 성적표, 생활기록부, 신체검사표. 좀 커서 모은 엽서, 공연 티켓, 각종 기념품까지. “이게 다 추억이야” 하며 모아놨던 물건들이, 방안 곳곳 수납공간이 모자랄 정도로 불어 있었다. 대부분, 이것까지 모아뒀었나 싶은 것들이었으며, 한 번도 다시 꺼내 보며 추억해 본 적 없는 물건들이었다.


인상적인 점은 쓰다 만 공책들이 아주 많았다는 것. 대부분 공책의 5~6장 정도만 채워져 있었다. 공책마다 처음에는 일기를 쓰거나, 수학 오답풀이를 하거나, 영화 후기나 독후감 등을 정성스러운 글씨체로 써놓았다. 그리고 그 뒤의 장들은 모두 허무한 공백이다. 그동안 제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채 잊힌 공책들을 쌓으니 제 무릎까지 왔다. 그쯤 되니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미처 다 채우지 못한 공책의 여백들이 마치 나인 것처럼, 나라는 사람을 증명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자기소개서를 쓰다 보면, ‘네가 어떤 사람인지 써봐라’라는 식의 요구들을 한다. 그럼 나는 그곳에 “저는 쓰다 만 공책입니다”라고 답해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없겠지. 자소서에는 “저는 채워나갈 여백이 충분한 인재입니다”라는 말장난이나 해야겠지. 그 빈 공책들이 뜻하는 바는 내가 시작만 하고 끝을 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뜻일까. 금방 질리고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이라는 뜻일까. 그 공책들에게 미안하고, 내 자신에게 미안했다.


왜 이렇게 끝까지 해본 것 없이 쉽게 포기하고, 쉽게 버려왔니. 쉽게 잊고, 쉽게 내버려 두는 사람이었니. 집요하지 못했구나. 끈기 있지 못했구나. 결국 너는 공책 한 권도 제대로 쓰지 못했구나. 해내지 못했구나. 칭찬을 해주려 해도, 너는 참 못났구나. 늘 그래 왔구나. 제 버릇 개 못 주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구나.


결국 그렇게 애지중지 모아 왔던 추억은 내게 그리움이나, 만족감보다 모멸감, 무력감에 짓눌리게 했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방치된 물건들을 보며, ‘추억 저장하다 추억에 깔려 죽겠구나’ 했다. 추억이란 이름들이 차지한 자리가 내가 채울 현재를 비좁고 숨 막히게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추억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지 않을까. 어느 순간을 필사적으로, 실존하는 무언가로 남기려 하는 것은 어쩌면 그 순간만으로는 부족했다는 방증이다. 기념할 만한 무언가가 없다면 쉽게 잊을 것 같아서, 그냥 그렇게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그 불안함을 물건에 기대어 해소하는 것이다. 그리고 물건에 인위적으로 기억을 덮어 씌우며 ‘추억’이라 칭한다.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기억이나 순간은 아무런 물증이 없어도 머릿속에, 가슴속에 언제든 꺼내볼 수 있을 만큼 선명한 형태로 남아있다. 반짝이는 메달과 빳빳한 상장 없이도 충분히 빛나고 선명한 기억들이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습관을 버리려 한다. 추억을 저장하려는 강박도 버리려 한다. 추억에 집착하다 보면 기억에 소홀해지기도 한다. 미술관에서 사 온 엽서는 결코 내가 관람한 전시회와 같지 않다. 전시회에 대한 감상과 기분을 제대로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엽서를 사고 포스터를  산다한들 그것은 내게 남아있지 않음과 같다.


구분하자면, 기억은 하는 것이고 추억은 남기는 것이라는 것. 남기려 하지 말고 하려 하자. 결국 나를 살게 하는 데에는 반짝 빛났던 순간의 기억이면 충분하다. 그 기억은 만져지는 것 없이도 내 안에서 긍정적인 일을 촉발하고 상기시킬 것이다. 매 시간을 소중히 기억한다면 먼지에 쌓여 방치되는 그런 추억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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