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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따코 Jun 20. 2022

Yes girl이 되는 길  

얼마 전 친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너는 너 자신에게 있어서만 비관적이라고" 내가 친구들을 보는 긍정의 시선과 상반된 비관의 시선이 바로 나  자신을 향해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조금은 어리둥절해졌다. 나는 오히려 타인을 긍정하는 것에 비해 나 자신을 훨씬 더 긍정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낙관이 나를 저해하고 있다고 여길 정도로 나는 나에게 관용을 베푸는 편이기 때문이다.


'타인이 바라보는 나’와 ‘내가 바라보는 나’는 어떻게 달라질까. 결국 그 둘이 합치되지 못하며 벌어지는 균열이 모든 걸 붕괴시킬 가능성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나’라는 사람이 정체화되지 못한 채 이곳저곳에서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 그것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나를 긍정하기 어려워지는 시점에 도달한 것도 사실이다. 해맑다기엔 나이가 찼고, 꿈이 많다기엔 이룬 것이 없고, 자유롭다기엔 어리숙해 보이는 것들이 꽤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가지를 뻗고 뿌리를 내려 사방대로 뻗어대는 가능성들을 쳐내느라 진이 빠진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가능성의 씨앗을 경계한다.


가능하다. 는 말은 방심의 기조로 들린다. 가능한 길을 마냥 걷기엔 조만간 발밑에 놓일 깊고 어두운 함정에 대한 공포가 앞선다. 그것이 우울이고 무력감이라는 언어들로 단정되곤 하는데 사실, 나는 이러한 감정들에 휩싸여 평생을 보냈다. 그것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그 감정들은 나라는 사람의 가장 밑바닥에 있다.


그 기저를 숨기기 위해, 나는 타인을 긍정하는 일에 열을 올렸는지도 모른다. ‘너’를 긍정하는 일이 ‘나’를 긍정하는 일과 닿아 있었다. 실로 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가능성을 본다. 당신은 편한 자리, 따뜻한 사람이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가끔은 그런 일들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까지 그러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기도 한다.


어릴 때는 이 방식이 꽤나 먹혔다. 나의 긍정이 친구들에게 곧잘 퍼졌고 내가 좋은 미래를 바라봐주면 그들은 나에게서 더 좋은 미래를 바라봐 주었다. 그러나 그때는 우리 모두 가진 게 없었고, 현실적인 지표들이 어떤 방식으로도 와닿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너를 긍정하는 말은 곧 나를 긍정하는 말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수 있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수치화해 따져보라는 과제 앞에 던져진 우리에게, 나의 긍정은 그저 허울 좋은 말이고 누구에겐 헛물켜는 소리에 불과하다. 마냥 긍정하는 사람을 우린 좋아하지 않게 된다. 속도 없다고 뭣도 모른다고 그렇게 대놓고는 아니더라도 속으로 나지막이 읊조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삶에 가시화될만한 것들을 많이 만들어놓지 못한 이가 하는 타인에 대한 긍정은 오히려, ‘비관’으로 비친다.


위선
너는 너를 긍정할 수 없어, 다른 이에게 희망이란 것을 의탁하는구나.


또 한 친구는 말한다. 과거의 는 정말 빛났다고. 그러나 지금은 아니라고. 과거의 너에 비해 지금의 너는 조금 더 초라하고 비겁해졌다고. 그렇다면 그런 거지. 어쩔 수 없다. 나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흘렀고, 주어진 시간 동안 그들이 기대했던 만큼의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했다. ‘실망 스티커’를 받았다면 탐스러운 포도송이 하나를 완성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사실이 여전히 괴롭다. 미래에는 그러지 않을 것이지만, 어쨌든 현재의 내가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존재로 인식된다는 것이 속상하기도 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게 지금의 나인 걸. 나는 지금 과도기에 놓여 있고, 성과가 아닌 오직 시작을 위해 전력을 다해야만 하는 걸. 실망하는 이들에게 미안하다. 나로 인해 그대가 잠시간 우울하고 기력을 잃을 뻔했다면 그 또한 미안하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take me, or leave me"라고 외칠 수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면 이미 아는 모진 말 대신 잠시간 나를 떠나 준다면 고맙겠다.


그러는 동안, 당신이 바라봤던 나를 수긍해보려 노력해보겠다. 그 수긍의 방식이 발전이 되도록, 나의 긍정이 당신에게 위선으로 비치지 않도록, 너와 나의 공식이 성립될 수 있도록 –에서 +로 나아가 보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말해주자면, 놀랍게도, 나는 아직 나를 긍정한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나를 믿는다. 그 믿음이 맹목적이고 과장될까 두려울 때는 있어도, 단 한 번도 내가 나를 믿지 않는가에 대해 의심한 적은 없다. 나는 내가 가진 것을 믿고, 가지지 못한 것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참으로 오만방자하지만, 그것이 내가 가진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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