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식스(DAY6) 원필의 첫 번째 솔로앨범 <Pilmography>에 마지막 트랙에 수록된 <행운을 빌어줘>라는 곡이다.
데이식스라는 그룹은 첫 미니앨범 <The day>의 ‘Congratulations’라는 곡으로 , 당시 JYP 최초의 밴드 아티스트, 멤버들이 직접 세션부터 작곡 작사까지 도맡는다는 기획을 걸고 데뷔했다. 나는 데뷔곡부터 매우 좋아했는데, 두 번째 미니앨범 <DAYDREAM>에서 취향을 제대로 때려 맞아 버리고 그 후로 데이식스 앨범은 꼬박꼬박 찾아 들었다.<DAYDREAM>에는 ‘놓아 놓아 놓아’를 필두로 ‘First time’ ‘Sing me’ ‘바래’ 등 데이식스의 팬이라면 콘서트 세트리스트에 꼭 들어있길 바라는 명곡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데이식스는 2017년부터 ‘Every day 6’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매달 신곡을 발표하는 프로젝트였는데 그것이 1년간 계속됐다. 상반기 하반기를 기점으로 매달 발표된 신곡들을 묶은 2개의 정규앨범을 발매했다. 데이식스 곡 중 가장 대중에게 알려져 있다 할 수 있는 ‘예뻤어’ 라는 곡도 ‘Every day 6’ 2월 발표곡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데이식스는 1년 동안 26곡 가량의 곡을 발표한 셈인데 멤버들이 전곡 작사/작곡에 참여하고 합주까지 하니 그 노고가 대단했을 성싶다. 후일담으로 멤버들이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할 것 같다고 아련하게 말하는 것에서 그 고생이 느껴졌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행복했다..
데이식스라는 그룹은 5인 멤버 모두가 보컬로 참여하며, 베이스, 퍼스트기타, 세컨기타, 드럼, 키보드로 이루어진 밴드다. 전문 세션 연주가들도 인정할 정도로 5명 모두 안정된 연주실력까지 겸비했다. 특히 보컬색들이 정말 다들 개성이 강한데, 각각의 보컬이 한 곡에 찰떡같이 조화되는 것은 들을 때마다 신기하고 전율이 돋는다.
데이식스는 2018년 <YOUTH> 시리즈를 시작으로 2019년 <The Book of Us>시리즈까지 발매했는데, 모든 앨범이 매번 새롭기도, 데이식스만의 색채가 강하게 묻기도 하는 명반들이라고 평한다. 정규 1,2집 <SUNRISE>와 <MOONRISE>에서는 절절한 짝사랑이나, 순정적인 남자 시점의 노래를 했다면, <Youth Part1> ‘Shoot me’에서는 ‘그래 날 쏴 뱅뱅’이라 외치는 도전적인 사운드를 들고 왔다. 콘서트에서 선공개를 했었는데, 현장에서 듣고, 미쳤다. 미쳤다.만 진짜 미친 사람처럼 골백번 읊조리고 왔던 기억이 있다.
개인적으로 데이식스 정체성의 확립시점이라 여겨지는 <Youth Part2> 부터 데이식스는 좀 더 넓은 차원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아픈 길’처럼 동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언어들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데이식스는 나에게 특유의 까불기 좋아하는데 그게 또 이상하게 행실은 건실한 훈내 폴폴 청년들이 모여서 끝내주는 노래를 부르는 그런 아이돌, 혹은 밴드의 경계에 머무르는 그래서 묘하게 친근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The Book of Us : Gravity>를 시작으로 더이상 그들은 소속사에서 밴드 한 번 해보라고 해서 했는데 마침 잘하더라는 재능돌이들이 아니라, 진짜 그들의 이야기가 담긴 것 같은 노래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For me’ ‘Best part’ ‘돌아갈래요’ 그냥 수록된 6곡의 노래가 한 곡도 빠짐없이 사운드, 가사, 보컬, 놀랍도록 균형감 있게 가슴을 울린다. ‘Gravity중력’이라는 부제처럼, 이 대중음악 세계를 부유하던 깐돌이들이 진짜 두 발 딱 딛고 “자 이제부터 우린 이런 노래를 할 거야” 라고 가슴에 불을 지르는 선언을 하는 듯한 앨범이었단 말이다.
아티스트의 개인적 사정이나, 음악이 공정을 거쳐 세상으로 나오는 과정에 그들이 가지는 고충을 팬들은 다 헤아릴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이 미디어 속에 존재하는 ‘우상체’이기 때문이기도 하며, 인간 대 인간이라도 다가가기 어려운 영역이라 그렇기도 하다. 지레짐작일 수 있으나, 2019년에 발매된 <The Book of Us : Entropy> 부터는 말 그대로 약간의 균열이나, 혼돈이 느껴진다. Entropy란 단어자체가 어떤 학문적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사전적 의미를 지니는데, 인문학적으로는 ‘체제에서 나타나는 구조의 결함 또는 무질서의 정도’를 나타낸다고 한다. 타이틀 곡 ‘Sweet chaos’는 ‘너’의 등장으로 모든 일상이 뒤틀리고 정신 없고 미칠 지경이지만, 그래도 좋다. 불안해도 좋다. 라고 말하는 노래다.
그리고 2020년 <The Book of Us : The Demon>이 발매됐다.
어제는 어떤 날이었나, 특별한 게 있었던가, 떠올려 보려 하지만 별다른 건 없었던 것 같아. 오늘도 똑같이 흘러가. 나만 이렇게 힘들까. 어떻게 견뎌야 할까. 마음에 소리쳐 울면 나아질까. Yeah we live a life. 낮과 밤을 반복하면서. Yeah we live a life. 뭔가 바꾸려 해도 할 수 있는 것도 가진 것도 없어 보여. I feel like I became a zombie 머리와 심장이 텅 빈 생각 없는 허수아비.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Oh why
당시 이 노래를 듣고, 머리가 띵해졌던 기억이 있다. 그냥, 팬이라면 아티스트가 노래하는 노랫말에서 어떤 신호를 읽으려는 것은 그냥, 관심의 본능이다. ‘연예인 걱정이 세상에서 제일 쓸 데 없다’는 존박의 목소리가 귓전을 멤돌아도 마음이 동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동안 솔직한 가사를 많이 써왔던 데이식스라서 더욱이 그런 걸 지도 모른다. 메시지를 떠나서도, Zombie는 정말 명곡이다. 아이유도 인정했다. HACCP인증보다 확실한 인증이다. 인즈엉..?
그리고 2021년 <The Book of Us : Negentropy – Chaos swallowed up in love> 를 발매한다. 앨범 전체가 팬송으로 느껴질 정도로, 데이식스를 지지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앨범이었다. 혼돈이 사랑으로 삼켜질 수 있다면,에 대해 증명하고도 반문해보고도 싶었던 좋은 앨범.
이 앨범 이후, 성진이 갑작스럽게 군에 입대했고, 영현, 도운, 원필은 Day 6, Even of day라는 이름으로 3명이 유닛활동을 했다. 2개의 미니앨범을 통해 ‘파도가 끝나는 곳까지’ ‘뚫고 지나가요’ 등을 발표했고 모두 너무 명곡이고, 주로 가사를 담당하던 두 멤버가 남아주니, 데이식스의 정체성 또한 잃지 않는 곡들이었다. ‘파도가 끝나는 곳까지’ 듣고 많이 울었고, 뮤비보고도... 하...
현시점에서는 제이를 제외하고 멤버 모두 군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멤버 제이가 데이식스를 떠난다고 발표했다. 데이식스 곡의 작사에 유독 많이 참여하고, 팬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원필도 올해 초 군입대를 앞두고 첫 번째 솔로앨범을 발표했다. 그것이 바로 <Pilmography>다.
필모그래피는 말 그대로 연혁이다. 시간 안에서 그 사람이 세상에 남겨온 작품들의 목록. <Pilmography> 앨범을 들으면서, 데이식스란 그룹 안에서 원필이란 이름 같이 단단한 흑연 같은 아름다운 아티스트가 성장했단 감회가 들었다. 솔로로서의 첫 앨범이지만, 처음이란 의미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원필의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가 차분히 정렬되고 있다는 신뢰의 의미에 방점을 찍고 싶은, 예상했지만 예상치 못했던 정갈하고 소담스런 그런 앨범이다.
이렇게 길게 데이식스란 그룹의 연혁을 읊어댄 이유도 그와 같다. 원필의 솔로앨범은 결코 데이식스의 색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원필 특유의 따뜻하고 섬세한 감각이 묻어있으면서도 그간, 데이식스를 사랑했던 청자들에게 잠시 자리를 비운 나머지 멤버들을 대신해서, 원필이 힘을 내어 그 남은 부분을 힘차게 노래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행운을 빌어줘>를 들으며 눈물이 났다. 그냥, 아무쪼록 행운을 빌어 줘. 내 앞길에 행복을 빌어 줘. 그리고 기대해 줘. 더 나은 내가 될 테니까. 기대해 줘.
나에 대한 기대가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실망시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동반하지만 그마저도 한 사람에게 굉장한 동력이 된다. 나한테 그런 사람이 있나 해서, 이러나 저러나 해도 있는 것 같아서 그냥 눈물이 났다. 나는 앞으로도 데이식스의 행운을, 행복을 빌 것이고, 다음 앨범, 또 다음 앨범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할 것이다. 그러니 계절을 돌아서 건강하게 다시 돌아오길. 우리 그렇게 다시 웃으며 볼 수 있기를. 행복한 마음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