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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따코 Apr 16. 2023

그럼에도 여전한 것들

세월호 9주기

올해의 벚꽃은 참 허무하게 졌어.

‘중간고사의 꽃말은 벚꽃’이라는 말이 있어. 4월 중순 즈음 중간고사를 치르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으레 쓰이는 말인데, 5월에 시험을 보는 너희들이 아마 두해만 예정대로 건넜다면 대학 교정에서 샷을 추가한 아메리카노로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며 내뱉었을지도 모를 말이지.


그런데, 올해 벚꽃은 중간고사 기간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버렸어.

코로나 이후로 실내 마스크까지 해제된 시점이라,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벚꽃 축제들도 김이 새버렸지. 예정했던 축제 기간 전에 비가 내려 벚나무들에서 꽃잎이 떨어지고 이미 초록 새순들이 올라와버렸거든.


나는 벚꽃에 별 감흥이 없었어. 보면 예쁘고 황홀하지만 금세 져버리는 그 연약한 꽃잎의 속성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 연약한 것들이 지는 모습을 보는 일은 가슴이 아프니까. 그런데, 올봄에 벚꽃이 빨리 떨어져서 그런지 벚꽃 이후의 풍경이 눈에 더 잘 들어오더라고.  나는 그 풍경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어.


분홍 꽃잎들 사이로 비집고 올라오는 초록잎들이 반갑게 느껴졌고, 겨울 동안 구청에서 무자비하게 가지를 쳐놓은 은행나무들도 가을이 오면 노랗고 빨갛게 물들 잎들을 피우는 모습이 싱그러웠어. 나는 지금까지 라일락이 그리 예쁜 꽃인지 몰랐어. 라일락은 꽃잎들이 꼭 먼지솔처럼, 좋게 말하면 솜사탕처럼 동그랗게 뭉쳐서 나는데 그 연한 보랏빛이 정말 아름답더라고. 거리마다의 향긋함은 덤이지.

좋은 것이 끝나면, 또 다른 좋은 것이 와. 세상은 그런 것들로 가득 차 있어. 다만, 자주 힘에 부쳐서 그런 것들조차 그냥 코를 간지럽게 하고 거리를 더럽히는 성가신 것들로 치부해 버릴 때도 있지만.


나는 그런 말이 싫어, 나의 오늘은 누군가에게 간절했던 내일이다. 같은 말. 나에게 끝없는 죄책감을 얹는 말이지. 이기적일지 모르지만, 나는 너희에게 어떤 것도 빚지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려고 해.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여기고 성실히 살아가려고 해. 다만, 너희의 시간이 아주 짧았다는 거. 그 시간을 누구도 보상해줄 수 없다는 것은 아홉 해를 돌아서도 부정할 수 없이 슬픈 일이야.


이맘때가 되면 나는, 많은 생각에 잠겨. 나에게도 여린 일부가 떨어지는 고통과 새로운 것이 생장하는 희망을 동시에 체험하는 시기거든. 또, 너희로 하여금 부끄럽지 않았나,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고. 근데 올해는 더욱 부끄럽네. 미안하기도 하고. 이건 좀 전의 결심에도 불구하고 나조차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이야.


세상은 더 나아지지 않았고, 어쩌면 점점 더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너희가 있었다면 좀 달랐을까. 일어나지 않은 일,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다른 결말을 자주 상상해.


올해도 너희를 기억해. 벚꽃이 떨어져도 사람들은 계속 살아갈 거야. 축제는 성황하지 못했어도, 황홀함에 오래 취하지 못했어도, 집 앞에서, 동네 공원에서, 한때 만개했던 벚나무를 찍은 사진을 그 기억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간직할거야. 그러니 걱정 마. 그리고 꼭 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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