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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따코 May 18. 2023

도움 받기와 도움 닫기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도움을 청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질 때가 있다.

도움을 청하는 것은 어쩐지 약점을 드러내는 일 같기 때문이다.


나는 키가 작다. 키보다 높이 있는 물건을 내리거나 신체보다 큰 물건을 옮기는 일이 힘들다. 혼자서 어렵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면 될 일인데, 그렇지 않은 적이 많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부득불 해내겠다고 선반을 밟고 올라가려다 부숴 먹은 선반도 여러 개고, 도서관에서 내릴 수 없는 책은 읽기를 포기한 적도 있다.


이는 저 혼자의 힘을 증명하려는 어린이의 “나 혼자 해볼래”의 고집과는 또 다른 것인데, 어른의 것은 어린이가 배우려는 자립심보단 자존심이자 오기 혹은 고립 쪽에 가깝다.


어린이가 도움을 청하는 일은 당연하다. 오히려 어린이를 돕지 않는 자는 인간성이 결여되었다고 봐도 어느 정도 무방하다. 어린아이들은 버스에서 내릴 때 그 작은 손을 허공에 휘적거린다. 제 한 보폭보다 높은 계단을 내려오며 두발이 안전하게 땅으로 착지하도록 도와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누군가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 성인 손바닥 크기에도 채 못 미치는 그 끈적끈적하고 꼬물거리는 손을 잡으면 없던 보호본능도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른다. 초·중생이 다니는 영어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나보다 덜 자란 이들에 대한 책임감을 생전 처음 느꼈었다.


아이들은 몇 번 얼굴만 익히면 덥석덥석 품에 안기며 ~해주세요. ~가 필요해요. ~을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같은 말을 서슴지 않고 해서 오히려 당황스러울 때가 있었다. 그 요구 자체가 당황스럽다기보다 누군가는 아주 작은 것들도 어렵게 해내야 할 때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 허리춤에 안겨 오는 어린아이들에 의해서야 피부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지금 내가 곤경에 처했고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면 나는 백 번은 망설일 것이다. 그 손을 잡을지 말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잡긴 하겠지만, 잡고도 생각할 것이다. 손을 내민 이의 숨겨진 의도나 이후에 내가 그에게 갚아야 할 일 같은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내가 부럽다고 느끼는 성격을 가진 이들은 도움을 주고받는 일에 대해 익숙했다. 도움을 달라고 말하고 도움을 주러 가는 길에 수치스러움이나 부채감 같은 것은 도드라지지 않고 의연하고 성숙한 분위기가 풍겼다. 그리고 도움을 주고 받는 네트워크가 넓고 유연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사실 도움을 청하는 법은 쉽다. 도움을 청하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면 될 일이다.

아이들에게 배운다. 도움을 청하자. 내가 혼자 힘으로 해내기 어려운 일이 있다면, 그리고 지척에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 누군가 있다면, 없더라도 내가 도움을 찾아 나설 마지막 힘이 있다면 도움을 구하자. 그것이 나를 구하는 길이자 더 나은 곳으로 도움 닫기를 해볼 기회가 될지도 모르니까. 자존심과 오기는 저만치 미뤄둔 사람이 진정한 자립심 있는 어른의 모습에 더 가까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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