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하게도 투둑하고 빠진 치아가 입속을 굴렀다 피가 묻어 나왔다. 꽤 생생한 입안 여린 살의 촉감을 느끼다 뽑힌 치아를 바라보다 꿈에서 깨었다.
기분이 좋지 않아,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역시나 치아가 빠지는 꿈은 소중한 누군가를 잃을 수도 있는 흉몽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마침, 전날에 할머니께서 응급실에 실려 가 수술을 해야 한단 소식을 들은 참이었다. 마음이 불안하여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더니 다행히 할머니는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퇴원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이상하게 운수가 좋았다. 간절히 바라던 어떤 기회에 당첨되었고 열렬히 응원하는 누군가가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먹은 음식이 맛있었고 기분도 날씨도 모두 가벼웠다. 기분 나쁜 꿈을 꾸었다는 것쯤은 까맣게 잊고 근래 들어 최고의 하루를 보냈다.
그렇다 보니, 그 꿈이 흉몽이 아니라 오히려 길몽이 된 것 같았다. 최근 어금니 부근 잇몸이 욱신거리듯 아파 신경이 쓰였다. 앓던 이가 빠졌으니 좋은 꿈이었던 걸까. 아니면 그냥 평소에 아픈 이를 신경 쓰다 보니 꿈에 나온 것일까. 무의식은 의식의 반영이고, 꿈도 현실의 연장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렇게 지레짐작은 별 필요 없다고 여기며 흉몽이 예견한 악재 같은 것은 가뿐히 비껴간 하루였다.
꿈이라는 것에 신경을 쓰게 된 것은 가족의 영향이 크다. 어머니, 아버지 둘 다 꿈을 많이 꾸는 분들이었다. 어머니는 거의 매일 밤 악몽을 꾸었고, 살려주세요. 제발요. 혹은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나는 경우가 많았다. 아버지 또한 꿈을 생생하게 꾸는 편이라 새빨간 쥐새끼들이 집 앞 하수구 밑으로 드글거리며 들어왔다는 나의 태몽을 자세히 묘사하며 말해주곤 했다.
아버지는 가족에 대한 생생한 꿈을 꾼 날이면 항상, ‘아버지가 나쁜 꿈을 꾸었으니 오늘 하루를 조심하라고, 찻길에 가지 말고, 위험한 것 근처에는 닿지도 말라’며 염려와 엄포를 동시에 내리곤 했다. 어린 나는 그런 말은 당연하게 흘려들었고 꿈을 유념해 딱히 처신을 조심한 날도, 그 꿈이 들어맞아 큰 해를 당한 일도 없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자신의 꿈은 언제나 예지몽일 것이란 걱정을 버리지 못했다.
얼마 전에는 서로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하며 살아가고 있는 친형제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밖으로 나갈 일이 있으면 조심해라’
‘왜, 꿈꿨어?’
‘응’
이라는 건조한 물음과 답이 오갔다. 참, 부모님의 영향이 형제에게 공평하고도 골고루 닿았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래도 누군가 나의 안위에 대해 걱정하는 일은 역시 나쁘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내 꿈 꿔”라고 말하는 것이 대표적인 닭살 멘트처럼 남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사랑하는 이에게 “까만 꿈 꿔”라고 말하는 이들을 보았다. 꿈을 꾼다는 것은 아무리 좋은 꿈이라도 어찌 됐든 조금은 피로한 일이다. 게다가 너무 좋은 꿈, 너무 나쁜 꿈은 꿈에서 깬 이후의 일상에도 영향을 끼치니까 더 신경 쓰이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바쁘고 지친 하루를 보낸 사랑하는 이가 일상을 마무리하고 잠에 들었다면, 그 이후로는 그저 까맣길, 심기를 거스를, 혹은 괜한 희망으로 들뜨게 할 어떤 것도 그의 잠을 방해하지 않길 바라는 것이다. 그 마음이 참 예쁘게 여겨졌다. 나는 사는 중 신경 쓰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일을 꿈으로 꾸는 편이라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두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네 꿈을 꿨다고 말해주는 사람. 나쁜 꿈이었다면 당신이 안전하기를, 좋은 꿈이었다면 예상치 못한 행운에 부딪히기를 기원하고 그 꿈을 구실 삼아 반가운 만남을 계획해 줄 사람. 그렇게 당신의 짧은 미래를 예언해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