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가 떴다. 먹구름 위로 물방울들이 빨강부터 보라까지의 찬란한 빛으로 반사되는 모양이 아름답다. 생에 처음 본 무지개다. 무지개를 보니, 그가 떠오른다.
그는 웃을 때 미간을 찌푸리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것이 전혀 못나 보이지 않았었다. 오히려 찌푸려진 미간이 그의 웃는 얼굴을 더 돋보이게 해서, 왠지 그 찌푸림이 있어야만 진정한 웃음이 완성되는 듯해 보였다. 미간을 찌푸리지 않고 웃는다면, 그것은 그의 거짓 웃음이었다. 그것을 구별해내기 시작하던 즈음부터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목이 탔고, 눈을 뜨면 그의 체온을 느끼고 싶어 한기가 들었다. 그도 나를 사랑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도 나로 인해 갈증을 느끼고 지독한 고독감을 느꼈을지는 모르겠다. 그와 상관없이 나는 그를 사랑했었다.
그는 아주 멋진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늘어놓곤 했다. 샐러드를 먹다가도, 멕시코에서 맛있는 아보카도를 재배하는 법을 말한다거나, 길을 걷다가도 국토종주에서 홀로 맞은 붉은 석양에 대해 말해주곤 했다. 그것들은 매우 생생하고, 희귀해서 그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그 사람을 아주 투명하고 귀한 유리알처럼 보이게 했다. 문지르면 신비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만의 유리구슬 같았다.
그는 왠지 연락이 닿지 않는 일이 많았다. 전화를 하다가도 뚝. 만나서 밥을 먹다가도 벌떡. 몸을 맞대고 있다가도 돌연. 급한 할 일이 있는 사람처럼, 아니면 어떤 퓨즈가 끊어진 사람처럼 갑자기 사라지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그를 붙잡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그의 잔상이라도 붙잡는 사람처럼 한참을 멍하니 있곤 했다.
그는 전반적으로 우울한 사람이었다. 잘 웃었지만 잘 울지 않았다. 울지 않음이 그를 우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아주 작은 자극에도 물에 물감이 떨어지듯, 진하게 영향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나를 옆에 두었던 것은 아마 내가 특별한 색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걸 알았던 나는, 내 색을 더 없애고 없애서 그를 탁하게도 맑게도 하지 않는 그런 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던지, 그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그 노력의 여파가 몰려와 한참을 힘에 부쳤었다.
우리가 헤어진 건, 아주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매해 경신되는 폭염 속에 그는 땀을 뻘뻘 흘렸고, 나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는 자신의 몸에 흐르는 소금기에 점점 불쾌해지는 것 같았고, 나는 그의 일그러지는 미간을 보며, 웃을 때 찌푸려지는 그의 아름다운 미간을 더 이상 볼 수 없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었다.
타는 듯한 태양열이 가시고, 석양이 지는 저녁, 무지개를 봤다. 그가 본 무지개는 어떤 모양이었을까. 완벽한 반원 모양이었을까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는 모양이었을까. 그가 그의 첫사랑을 잃었던 날 무지개가 떴다고 했다. 그는 그 무지개를 빛의 경계가 흐려져 먹구름 뒤로 사라질 때까지, 이 세상에 한시도 존재한 적 없는 듯 증발할 때까지 지켜봤다고 했다. 그의 집 9층 난간에 서서 넋을 놓고 보다가, 저도 모르게 몸이 앞으로 많이 기울었는데, 그 순간 무서워 얼른 몸을 뒤로 뺐다고, 그리곤 화가 난 듯 창문을 쾅 닫아버렸다고, 그래서 또다시 비참해졌다고 그는 말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