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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따코 Jan 20. 2021

한낮의 지하철은 평화롭다.

지옥이다. 

4년 동안 부천에서 서울까지 약 1시간 30분의 거리를 통학하며 숨 쉬듯 한 생각이다.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 불신지옥을 연호하는 아주머니에게 말하고 싶었다. “신은 당신을 왜 이 지옥에 있게 했나요”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은 지하철역 쪽으로 오줌도 누지 않았다.
 
한 칸의 열차에 사람들이 통조림 된 꽁치들처럼 들어있는 모양, 하나같이 찌푸리거나 체념한 얼굴. 각자의 몸을 서울 땅까지 옮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열차에 오른 사람들. 누군가 인간 밑바닥의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 한다면 1호선을 딱 한 달만 타보라고 권하겠다. 


앞사람에게서 닿는 불쾌한 숨결, 악취, 충돌, 성희롱, 앵벌이, 잡상인, 종교, 사채, 시민의식을 상실한 사람들. 여름엔 살이 닿고, 겨울에 두꺼운 외투로 인해 비좁다. 봄, 가을엔, 난방도 냉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열차에서 적정온도를 찾지 못한 몸뚱이가 땀만 줄줄 흘린다.


앞사람의 백팩에 얼굴을 맞고 안경을 떨궜을 때, 옆에 앉은 할아버지의 독방구를 그대로 들이마셨을 때, 손잡이를 잡겠다고 쳐든 아주머니의 암내를 맡을 때, 주말 밤 열차에 열심히 토사물을 분사하던 취객, 등산스틱으로 사람 찍어가며 서로 자리 잡아주느라 바쁜 등산객 무리, 나에게 살기 어린 시선을 떼지 않아 등골을 서늘하게 했던 한 남성.


내가 직접 경험한 일 외에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고 뺨을 맞은 친구, 자고 있는 틈 가방에 사용한 콘돔이 넣어져 있던 친구, 불법촬영을 당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하철은 말 그대로 무법천지 같은 기괴하고 혼란스러운 공간과 같았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괴롭게 한 건 그 무례함과 불쾌함들이 내 정신과 몸으로 스며든다는 것을 인지할 때였다. 같은 사람을 혐오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들을 향한 혐오표현을 말로 내뱉는 것이 서슴없어지던 내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체화한 불필요한 아집들, 행동들이었다. 


사람을 비집고 빈자리를 찾기에 혈안이 되고, 만원 열차에 어떻게든 몸을 구겨 넣으며 다른 승객의 안전을 간과하고, 허름하고 다친 이들을 애써 자는 척 외면했다. 그렇게 일상처럼 스치는 비인간적인 순간들은 차츰 내 영혼을 갉아먹었다. 남들은 겨우 통학하는 걸로 그러느냐 할 수 있겠다마는 2학년을 마치고 한 1년의 휴학에 통학의 이유가 꽤 큰 비중을 차지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어느덧 학교를 졸업한지도 2년, 얼마 전, 오후 3시 즈음 한낮의 전철을 타보았다. 전철을 타고 있는 데 기분이 좋았다. 낯선 기분이었다. 뚫린 지하를 빠르게 질주하는 쾌감도, 지상으로 올랐을 때 창으로 빠르게 스치는 낡은 건물, 어지러운 전신주, 빛이 바랜 교회 십자가, 간판들 따위도 문득 그리웠나 했다. 


무겁고 긴 물체가 철로를 스치는 굉음이 뭉툭한 소리로 심장을 묵직하게 울리는 것도, 열차가 정차할 때 몸이 옆으로 살짝 기울었다 튕기듯 중심을 잡는 일도, 마주 앉은 사람들의 신발을 관찰하고, 끔뻑끔뻑 조는 사람, 이어폰으로 연인과 소곤소곤 통화하며 얼굴을 붉히는 사람의 얼굴을 보는 일도, 적당한 피로함과 무료함이 뒤섞인 나른한 공기도, 눈이 오면 눈발이 가로로 세차게 날리는 것도, 겨울의 뜨겁게 달궈진 난방 좌석도, 붐비는 역 사이사이 묵묵히 존재하는 급행열차도 환승열차도 탈 수 없는 낡은 역들도 좋아 보였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생각해본다. 상황이 달라졌다. 우선 나는 사람이 붐비는 시간대에 있지 않았고, 학교가 아닌 나의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사람들은 무례하지 않았고, 서로 갈등하지 않았고, 눈치 보지 않았으며, 나 역시 그러할 필요 없었다. 


경멸했다는 것이 실은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역시 나는 자신이 없어진다. 취직을 하고 다시 이 지하철에 몸을 실는다면, 결국 이 전철은 다시 지옥 같은 이동수단에 불과해질 것이다. 다시는 이 아름다운 것들을 아름답다 느끼지 않을 것이며, 증오와 환멸의 감정으로 모든 좋은 것들을 태워버릴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닥칠 나의 일상이 그렇게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소모적인 일상이 된다면 나는 다시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버텨내야 하는지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경험한 바로 반복되는 일상은 꽤 소중한 것들을 기척 없이, 흔적 없이 집어삼킨다. 


그래서 나는 지금 한낮에 있나보다 한다. 한낮은 한가롭고 배부르고 평화롭다. 금방 다시 아침이 올 것이다. 몸이 굳고, 짜증이 치솟는 아침, 피로가 누적되고,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저녁도 올 것이다. 지금을 즐기자니 나는 벌써 다가올 저녁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래 잠시 아름다웠더랬다. 


한낮의 지하철을 평화롭다. 한낮의 지하철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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