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땅따코 Jan 31. 2021

키스신보다 울어본 사람

<응답하라 1988>이 인기리에 방영 중이던 때, 나 역시 본방송, 재방송, 다시보기까지 섭렵했었다. 물론 나는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파였다. 극 중 택이가 덕선이와의 첫키스가 꿈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덕선이에게 다시 한번 키스하는 장면이 있다. ‘어차피 남편은 택’이었다는 치열한 공방전의 종지부를 찍는 장면이었다. 그때 그 장면에 삽입된 노래가 바로 변진섭의 <그대 내게 다시>였다.


방 안에 앉아 <그대 내게 다시>를 들으며 펑펑 울었더랬다(남편이 택이라 운 것은 아니다) 아무리 슬픈 영화를 보고도 잘 안 우는 내가 노래를 듣고 운 경험은 처음이라 나도 당황스러운 기억이 있다. 노래의 모든 가사와 멜로디가 가슴에 꽂혀 나를 압도하는 것 같았다.  


그대 내게 다시 돌아오려 하나요
내가 그댈 사랑하는지 알 수 없어 헤매이나요

맨 처음 그때와 같을 순 없겠지만 
겨울이 녹아 봄이 되듯이 내게 그냥 오면 돼요

헤어졌던 순간을 긴 밤이라 생각해
그대 향한 내 마음 이렇게 서성이는데

왜 망설이고 있나요 뒤돌아보지 말아요
우리 헤어졌던 날 보다 만날 날이 더욱 서로 많은데

그대 내게 다시 돌아오려 하나요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내게 그냥 오면 돼요

꽤나 신비한 경험이었다. 누군가에 의해 창조된 것이 마음에 오롯이 닿는 느낌. 무언가 창작하는 일을 동경하는 마음이 더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 후에도 가슴에 꽂히는 노래들이 있다. 언제나 주로, 이적, 김동률, 이소라. 


누군가를 천재라 칭할 수 있다면 나는 그들을 천재라 하겠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상을 바라보는 일관된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에게 끊이지 않는 영감을 주며, 주옥같은 노래들을 앨범으로 묶어 발매해내는 그 능력이 바로 '天才' 하늘이 내린 재능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들의 노래는 반짝 차트를 맴돌다 사라지는 노래가 아니라 10년, 20년, 묵힐수록 맛이 좋아지는 장처럼, 혹은 저 먼 나라 보르도 지방의 와인처럼 때마다 향이 깊어지며, 감흥도 달라지는 어떠한 작품에 가깝다. 


그들은 그들이 의도한 선율 위에 정확한 가사를 써 내려가고 똑바른 발음과 자신만의 발성으로 음과 음절을 노래한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자면 감사한 마음을 넘어 성스러운 마음까지 들기도 하는 것이다. 


저들은 어떤 삶을 살았기에, 어떤 사람들을 만났기에 저렇게 아름답고 가슴 아픈 가삿말들을 쓸 수 있었을까. 그들의 삶까지 동경하기에 이른다. 


20살, 대학교 첫 수업은 공통교양과목이었던 ‘나의 삶, 나의 비전’이라는 강의였다. 그 강의에서 대학생활 동안 이루고 싶은 단 하나의 목표를 발표해보라 했었다. 나는 그때 “무엇이 되었든 나만의 창작물을 완성시켜 보는 것”이라고 답했었다. 그때는 어리석게도 그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으며, 그 순간 떠올라 대답한 것이었다. 
나는 대학 졸업할 때까지 단 한 편의 단편소설을 완성할 수 있었다. 온전히 나의 저작물이며 창작물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15,000자 내외의 소설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소설에 말할 수 없는 자부심을 느끼며 애착을 느낀다. 
나의 첫 소설이니까.


이적, 김동률 이소라에게도 첫 창작물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 그들이 처음으로 발매한 곡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첫 창작물도 분명 서툴고 부끄러운 것이겠지만, 사랑하는 것이겠지.


나는 그들을 동경하는 나 자신이 좋고, 그들의 노래를 점점 더 이해해가는 나도 좋다. 아주 오래도록 그들을 동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은 아직 따뜻하고 살만한 것이라고, 아름다운 사람들은 언제든 네 곁에 다가올 거라고, 세상엔 사랑, 우정, 행복 같은 숭고한 가치들이 정말로 존재한다고 말해주는 그들의 노래가 이 세상에서 절대 끊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창작을 하는 일이 그들에겐 어떤 고통 이래도, 나는 그것 또한 그들에게는 즐거운 마음 이리라는 이기적인 믿음으로 그들의 애착들을 그들의 마음들을 그들의 존재를 현재재생목록에 꽉꽉 채워 놓는다. 


멀리 그대가 보일 때면
난 가슴이 떨려 어김없이
어제 그제도 보았는데
설레는 내 맘이 이상해

그대와 손을 마주 잡고
보드라운 바람 벗 삼으니
그냥 걷기만 하는데도
터지는 웃음이 이상해

슬픔이 머물다 간 자리
눈물이 고였던 흔적
어느새 시원하게 씻겨 내려가

나는 그대 곁에
그댄 내 맘속에

넓고도 넓은 세상 안에
그 많고도 많은 사람 중에
우리 둘이 함께라는 게
그럴 수 있단 게 이상해
이상해 _ 이적


작가의 이전글 Super Single 찾으시는 거 맞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