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를 기억하며
네 엄마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네 엄마의 몸은 어디 있지?
내게 남은 그녀의 기억은 내가 죽으면 어디로 갈까?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에서 주인공 루디의 대사이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아내 크루디를 그리워하며 막내아들 칼에게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일터에서 돌아와 편히 쉴 수 있는 아늑한 집과 같았던 아내, 들고양이 같은 열정을 가진 아내, 자식과 남편을 위해 희생했던 아내의 삶, 그런 아내에 기대어 살아온 루디의 삶. 몸은 이미 사라졌지만, 그녀는 여전히 루디의 기억 안에서 존재하며 루디가 눈감기 전에 마지막으로 재회를 한다. 그리고, 루디는 또다시 젊은 아가씨 '유'에 의해 기억된다.
한 사람의 존재란, 육신을 뛰어넘어 다른 사람들에게 남은 그 사람에 대한 기억까지 포함해서 이해해야 한다. 이렇게 남아 간직되는 기억과 그에 대한 감정이 살아 있는 한 그는 죽지 않고 다른 사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마치 긴 장마와 태풍으로 내려앉은 흙담이 다시 메워지고 고쳐지면서 더 튼튼한 담이 되어가듯이, 어쩌면, 이러한 기억들은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좌절하고 지친 나를 성장시키고 나의 삶을 더욱 온전하게 만들어가는 데 필요한 쓰디쓴 보약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와 관계한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모여 나의 역사가 완성되어 가는 것을 아닐까.
할아버지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그러다 보니 할배 할매 하며 어리광을 부리고 떼쓰는 전형적인 사랑의 끈은 자연스럽게 외갓집으로 연결되었다. 게다가 참 드물게도 우리 외갓집은 한마을에 있었다. 여느 시골 마을 집성촌에서 아래 마을의 안동 김 씨와 윗마을의 진성 이 씨, 이 두 집안이 사돈을 맺은 것이다. 태어나고 자란 마을에서 처녀 총각이 결혼을 하여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었다. 이십 대 초반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다 보니 큰 형님보다 어린 외삼촌들도 생기는 상황이 벌어졌고, 한마을에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서로의 산후조리를 해 주시곤 했다.
우리 집 사랑마루는 나름 넓은 편이었는데, 특히 비 오는 날이면 마루 가장자리부터 젖어들어오는 빗방울을 피해 마루 제일 안쪽 벽에 기대어 앉아서 토닥토닥 마루를 두들기는 빗소리와 마당을 가로지르는 물줄기들을 보고 있으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그저 비와 한 몸이 되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마루 틈 사이로 보이는 마루 아래의 어두컴컴하고 정지된 세계는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가끔은 마루 틈 사이로 작은 나뭇가지며 돌조각 같은 것을 떨어뜨려 혹시라도 살고 있을 미지의 신비로운 생명체의 흔적을 찾곤 했다. 외갓집 마루는 우리 마루보다 많이 넓기도 하였지만 높이는 두 배나 더 되어서 마루밑의 세상을 속속들이 탐험할 수 있었다. 흙이 묻어 있는 괭이와 삽, 반쯤 접힌 장화, 한쪽 구석에 먼지에 덮여 있는 책들, 종이 박스를 가득 채운 농약병들과 그 옆에 세워져 있는 분무기 통. 그리고 그 용도를 짐작할 수 없는 다양한 크기의 톱니바퀴가 달린 도구들도 많았었는데, 특히 거기서 풍기는 먼지 낀 기름냄새는 아주 오래된 기억처럼 오묘했다.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마치 로보트 태권브이나 마징가 제트의 김박사가 된 듯한 우쭐함도 느낄 수 있었다.
외갓집은 제사도 꽤 잦은 편인데, 특히 추운 겨울 차가운 마루 위에서 절을 하는 것은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얼어붙은 강처럼 차가워진 겨울밤의 마루, 그리고 마루 틈사이로 쉴 새 없이 올라오는 차가운 바람에 나의 발가락들은 추위를 피하려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꼼지락꼼지락 거린다. 마루 밑의 신비로움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나의 마음은 방안 따뜻한 아랫목으로 가버리곤 했다. 늦은 겨울밤의 곤혹스러움을 감수하게 하는 오직 한 가지는 바로 제사 음식이었다. 이빨에 기분 좋게 떡하니 달라붙은 유과, 목을 타고 내려가는 달고 시원한 배,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튀김과 부침개, 그리고, 잘 익은 고사리를 듬뿍 넣어 비빈 제삿밥은 외할머니의 손맛이 배인 탕국이랑 찰떡궁합이었다. 생각만 해도 허기가 지고 또 군침이 돈다.
가을이 지나면서 외갓집의 음식들도 더 풍성해졌다. 특히 산에서 잡은 꿩고기를 두툼하게 찢어 만든 만두가 일품이었다. 반을 가르면 툭 튀어나오는 꿩고기와 함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오리지널 손 만두의 육즙은 세계 삼대 진미와 비교해도 빠지지 않을 정도인데 아직까지도 그 근처에라도 갈 만한 만두를 결단코 본 적이 없다. 동짓날 낡은 오봉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하얗고 동그랗던 새알들, 직접 빚어 만들어 항아리에 가득 들어있던 막걸리, 외갓집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을 법한 감나무에서 딴 감으로 만든 하얀 분이 피어오른 다디단 곶감. 외할머니의 손맛은 영역을 가리지 않았다.
그 시절 나는 깨소금에 밥을 비벼 먹는 것을 유난히 좋아해서 일주일에 서너 번은 그렇게 아침을 먹곤 했다. 한 번은 어머니가 바쁘셔서 외할머니가 대신 아침 식사를 준비해 주신 적이 있다. 지극히 간단한 레시피 위에 외할머니의 손맛은 어떻게 얹어질까 궁금했었다. 고소한 향이 가득한 첫 숟가락이 입에 들어가고 나는 난생처음 이질감이란 것을 경험했다. 고소함과 달콤함의 절묘한 만남. 뭐라 내색도 하지 않고 가능한 한 빨리 먹어 치우고 학교에 갔더랬다. 그을음이 낀 정지 한편에 있는 하얀 소금과 설탕은 구분이 어려웠고 외할머니는 설탕과 깨를 같이 갈아서 비벼 주셨던 것이다. 손이 익숙하지 않은 부엌에서는 외할머니의 손맛도 빛이 바래나 보다.
외할머니의 손맛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내가 결혼을 하던 그 해 팔월이었다. 뜨거운 여름 햇살을 머리에 이고 이마에 연신 땀방울을 훔치며 아내와 함께 마을 제일 위쪽에 위치한 외갓집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 더운 듯 시원한 외갓집 마루에서 외할머니는 인정 많은 목소리와 깊고 따뜻한 눈길로 우리 부부에게 구수하고 시원한 밥상을 차려 반겨 주셨다. 힘드실까 봐 잠깐 인사만 드리고 내려가려고 했었으나, 생각과는 다르게 나는 자연스럽게 숟가락을 들고 외할머니표 된장찌개에 밥을 비벼 먹고 있었다. 내 안에 쌓여 있는 외할머니의 손맛과 정감 어린 외갓집 마루는 나의 이성을 너무나 쉽게 해제했고, 한 순간에 나를 다시 어린 날의 외할머니 밥상으로 옮겨갔다. 뒷산의 꿩고기가 들어간 것도 아니고, 방금 새로 끓인 따뜻한 된장찌개도 아닌, 그저 아침에 외할머니가 드셨던 식은 된장찌개에 나물 반찬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기분이 아련하고 군침이 돈다. 입과 혀도 그때의 기억을 또렷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마당에 서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작고 정겨운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해 넘어가는 앞 산 능선 위에는 소나무이 나란히 줄을 서 있었다. 여느 시골 저녁 광경이 특별한 기억으로 아내의 삶 속으로 들어와 아직까지도 그리운 이야깃거리가 되곤 한다.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9월의 저녁, 외할머니가 돌아가신다는 연락을 급하게 받았다. 무정한 환자복을 입고 누워계신 외할머니의 얼굴에는 어떠한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 예전의 그 다정함 들은 어디로 갔을까. 한마디 말조차 건넬 수 없는 마지막 인사, 그저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겨울 감기와 기침으로 유난히 고생하셨던 외할머니는 그해 겨울이 오기 전에 돌아가셨다. 영정 사진을 찍을 겨를조차 없는 긴급한 상황이 되어 예전에 찍어두었던 가족사진들을 찾아보았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뒤늦게 찾은 한 장의 사진 속에서 외할머니는 환하게 웃고 계셨다. 된장찌개를 차려주시던 바로 그때의 사진이었다. 소중함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때인가 보다.
대가족을 일구신 외할머니를 추모하기 위한 화환과 문상객은 며칠이고 끊임없이 이어졌다. 시골 마을에 두 개의 절이 있다 보니, 스님의 염불도 두 번에 걸쳐 진행이 되었고, 특히 그중 한 분은 나의 외삼촌이다 보니 좀 더 각별하고 또 더 슬프게 들려왔다. 등을 기대고 앉은 술상에는 살아있는 후손들이 서로의 안부와 각자 짊어진 삶의 무게로 밤을 가득 채우고, 한쪽 구석에서는 요란한 화투판으로 상갓집의 밤을 밝혔다. 그렇게 외할머니는 피어오르는 향 뒤에서 이 모든 광경을 그저 평온한 얼굴로 맞이하며, 자식들의 대화에서 잠시 피어올라 서로를 이어주고 계셨다.
장지는 마을 뒷산 초입 양지바른 곳으로 정해졌다. 장례식장의 번잡함과 떠들썩함과는 사무 다르게 뒷산 초입에 자리한 장지는 키 큰 소나무들 사이에 조용히 자리 잡아 문상객들의 얼굴에도 숙연함이 묻어났다. 나는 사진을 찍고 있었다. 무슨 마음으로 용기를 내는지 아직도 모르지만, 나는 외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찍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사명감으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아무도 신경 쓰거나 말리거나 하지 않으셨다. 어젯밤을 가득 채우던 인생사의 수많은 이야기들은 향 연기와 함께 다 타버리고 흩어진 것처럼, 장지에서 들리는 소리는 산새소리, 바람소리, 묘를 밟는 소리, 후손들의 흐느낌만이 전부였다. 하관을 하고, 다지고, 봉분을 만드는 그 순간까지도 사진을 찍었다. 사진들은 외삼촌들에게 전달이 되었고, 기록의 의무를 다한 사진들은 나에게서도 조용히 잊혀갔다.
15년이 더 지난 어느 날, 셋째 외삼촌이 전화를 하셨다. 어떤 이유인지 궁금했지만, 외삼촌은 외할머니 장례식장 사진을 찾고 계셨다. 외삼촌이 사진을 요청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자식들 결혼식 사진들, 시골에서 찍은 옛날 외갓집 사진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외삼촌과 연관된 모든 사진들은 가지고 싶어 하셨다. 외삼촌의 전화를 받은 후 우연히 외할머니의 다른 사진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때가 집사람이 처음으로 외할머니 뵙던 날이었지, 외할머니가 집사람을 많이 이뻐해 주셨는데', '낡은 오봉에 차린 된장찌개가 참 맛있었는데'. 순간 내가 누군지도 잊어버리고 외할머니의 추억으로 빠져들었다. 외할머니의 사랑이 다시 느껴진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핑그르르 돈다. 광대뼈에 애써 힘을 주며 눈물을 삼킨다. 외삼촌도 아마 희미해져 가는 기억들을 사진 하나하나에서 다시 만나고 어머니의 사랑을 한 번 더 느껴보고 싶은 건 아니었을지, 또 어쩌면 본인에게 다가올 시간을 미리 보고 계신 건지도 모르겠다.
처 외할머니는 아흔을 넘긴 나이에 시골에 혼자 계신다. 예전에는 틈틈이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지만, 코로나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쉽지 않아 안타깝다. 단층으로 되어 넓은 마당에 가을이 오면, 빨간 석류와 홍시들이 달콤한 향을 풍기며 나훈아의 노래를 흥얼거리게 부추기는 그런 외갓집이다. 비록 마루는 우리 외갓집보다 작지만, 창문을 통해서 바라본 마당은 각종 채소와 고추로 가득했다. '김서방' 하면서 잡아 주시던 거칠지만 따뜻한 두 손, 깊은 눈, '많이 먹게'하시면서 후한 인심으로 밥 한 그릇을 더 뜨시는 처외할머니. 나는 어린 시절의 외할머니에 대한 향수를 느낀다. 사진을 자주 찍어두지 못해서 기억에서조차 가물가물한 외할머니를 대신하여, 처 외할머니를 뵐 때마다 사진을 찍어 두리라 마음을 먹었건만 한사코 거부하신다. 늙고 주름이 패인 피부와 흰 머릿결이 신경이 쓰인다고 하신다. 나에겐 너무나 자연스럽고 정겨운 눈부신 머릿결이지만 당신에게는 그저 세월의 창피함으로만 보이시나 보다. 그래서 나는 틈틈이 몰카 찍듯이 아주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는다. 외할머니의 사진을 찍듯이 처 외갓집의 모습을 휴대폰 사진으로 남긴다.
외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시고 없지만,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은 내 안에 남아 살아 있다. 처 외할머니의 손길을 통해 내 손을 잡아주고, 외삼촌과의 전화 통화 속에서 같이 이야기하고, 산채비빔밤과 함께 시킨 막걸리를 같이 마시며, 그렇게, 외할머니는 가끔씩 되살아나서 나의 삶의 순간을 함께 한다. 삶과 죽음은 결코 같이 할 수 없는 정반대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짚으로 꼰 새끼줄 같이, 삶과 죽음의 두 가닥이 서로 잘 얽혀 더욱 단단한 인생의 새끼줄이 되는 건 아닐까. 그리하여 때로는 단옷날 바람을 가르는 그네 줄이 되기도 하고, 짚신이나 멍석이 되어 또 다른 완성이 되어 가는 건 아닐까 하고 희망해 본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몸에는 세포 단위의 물리적인 죽음과 탄생이 반복되고 있다고, 그래서 평균 80일이 지나면 내 몸은 새로 태어난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이렇게 일 년 동안 몇 번이나 새롭게 태어나는 내가, 원숭이나 고양이, 또는 피카소가 아니라, '나'일 수 있는 이유는 '나에 대한 기억'이 살아 유지되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때 친구들과 말타기 했던 놀이터, 입시 공부했던 책상, 즐겨 연주하던 기타, 외할머니의 된장찌개, 바닷가의 시원한 바람, 패기 넘치던 첫 직장, 생일 케이크와 촛불, 이 모든 순간의 기억들이 바로 '나' 인지도 모르겠다. 완전한 죽음이란 그래서, 아무리 해도 떠올릴 수 없는 그래서 완전히 사라진 것들에 한정될 것이다. 가족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유년 시절의 기억, 한때 같은 반이었지만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 학급 친구들처럼, 한때는 삶의 일부분이었으나 이제는 기억에서조차 완전히 잊혀 영영 사라진 것들에만 한정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나처럼 오늘도 알람 소리에 아이들을 깨우고, 아침을 먹고, 커피를 내리고, 명상을 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고민하고 또 사색을 한다. 다른 것이 있다면, 새로 산 기타로 타레가의 'Lagrima(눈물)'를 매일 연습하는 것이다.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며 만들었던 기타 곡이라지만, 그 서정적인 멜로디는 어린 시절의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고 외갓집에 대한 기억을 더듬게 만든다. 한동안 쉬었던 탓에 내 손가락들의 감각은 이미 무뎌져 있고, 연주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게 바래져 있다. 손가락으로 악보를 익히고,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를 듣고 또 들으며 기타 지판과 줄에 감정을 얹어간다. 새로운 기억들을 내 손가락에 입혀 간다. 그렇게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기억을 지금 이 순간에 엮어 나의 삶을 채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