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을 기반으로 한 삶의 여정을 나누기 위해 씁니다.
저는 태어난 줄도 몰랐습니다.
저와 가까운 사람 중에는 태어날 때를 아직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의 기억은 깜깜하기만 합니다.
나 자신을 처음으로 목격한 것은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 찍은 사진에서였습니다. 왼손에는 장난감 총을 들고 한낮의 태양빛에 찡그린 채 어머니 옆에 서 있었습니다. 까까머리의 수줍은 표정이었습니다. 그 이외의 어린 시절의 기억은 낡은 흑백 사진 같습니다. 떨어져 나온 모자이크 조각처럼 반짝할 때도 있지만 기억이 오래가지는 못합니다. 마치 다섯 살이나 여섯 살로 갑자기 태어난 것 같습니다.
경험과 기억의 조각들이 모여 삶이 된다고 하는데요. 어쩌죠?
10대에는‘나’라는 존재를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내가 남들과는 다르구나 하면서 말이죠. 시간이 더 지나면서 스스로 똑똑해지기 시작했다며 ‘나만의 원칙’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나’라면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것들과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을 정했습니다. 예를 들면, 바르게 살아야 한다, 불의에 화를 내고 미약한 것들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욕을 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위대해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세뇌시켰습니다. 나를 제외한 다른 대상들에게는, 이를 테면, 가족들과 세상 사람들 그리고 우주만물에게 옳고 바르기를 강요했습니다. 특히 나에게는 그렇게 대해줄 것이라고 믿고 또 요구했습니다. 자아가 형성되고 성숙해지는 시기라고도 말하지만, 모두 스스로 만들어 낸 ’고집‘이었습니다.
20대와 30대에는 그런 고집들을 조심스레 하나씩 손질하기 시작했습니다. 착하다고 칭찬받으면 더욱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인정을 받을 때면 우쭐해져 어깨가 올라갔습니다. 동료들이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리 조심하던 때도 많았습니다. 그들과 비슷해지려 조바심 내면서 나를 움츠려 그들에 맞추어갔습니다. 그토록 내 안에서 회오리 치던 것을 눌러 가두기만 했습니다. 가두어 둔 것을 들킬까 두려워 더욱 두꺼운 벽을 쌓아 올렸습니다. 그렇게 터무니없이 살아왔지만, 그런 모습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 덕분에 여기까지 살아온 것도 사실인지라 고맙기도 합니다.
그것들이 결국 ’나‘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40대가 되자 책임질 것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어깨가 무거워졌다고 느껴질 때 즈음에 눈앞에 갈림길이 보였습니다. 여태껏 걸어온 넓은 길 옆으로 작게 갈라져 나가는 길이 보였습니다. 아직은 작고 좁아 보이는 길에서는 가슴을 살랑이는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무심히 지나치기엔 너무 오묘한 느낌이었습니다. 앞으로만 계속 가서는 안될 것 같은 느낌이 올라왔어요. 말 그대로 ‘나는 멈췄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 꼼짝 않고 멈춰 서서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갈랫길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흐릿함과 애매모호함만이 가득한 안갯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멈춰 섰고, 그곳에서 내 마음과 삶의 방향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이 처음으로 나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스스로 깨어난 첫걸음이었습니다.
스스로 살아가야 할 때가 온 것을 알았습니다.
세상과 남들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요.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고 또 그들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뭔가 제대로 알기 시작할 때까지 40년 하고도 더 걸렸습니다. 드디어 철이 든 것인지, 아니면 나간 것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고, 나는 작은 길을 택했습니다. 그동안 걸어온 넓은 길은 곧 그 끝이 보일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그 끝을 굳이 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올림픽 같던 그동안의 길은 치열한 경쟁으로 가득했습니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만 그리고 더 멀리 가야만 했습니다. 그곳에 성공과 행복이 있다고 모두들 말했습니다. 넘쳐나는 남들의 이야기에서도 꽤나 자주 목격되었습니다. 나도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조금만 더 가 보면 반짝이는 것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속삭임을 따라갔습니다. 그때는 그 말이 더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누군가가 이미 닦아둔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기에 적당한 길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삶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만족했다면 가던 길을 계속 가는 것이 당연했을 것입니다. 40년이나 더 오랜 시간 동안 퀘스트 하듯이 달렸지만 남들의 이야기가 저의 이야기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길을 아예 몰랐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의 시야에 늘 있어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늘 무시하며 애써 눈길을 돌렸고 늘 남들의 말을 따라갔습니다. 좀 더 일찍 멈춰서 돌아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올라옵니다. 뭐, 이제라도 다행히 안개가 걷혔습니다. 좁은 길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첫 번째 길이었습니다. 내가 걸어야 할 진정한 길임을 알았습니다. 지금 이 삶의 순간의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과 함께하는 길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스스로 알게 된 기분이 이런 걸까요. 가슴이 벅차고 심장 소리가 유난히 커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살아 있다’는 느낌이란 걸 알았습니다.
세상의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다만 이런 느낌으로 평생 살아가고 싶은 마음만 가득한 것을 알았습니다.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들려드릴 이야기가 막상 새로운 게 아님을 알기에 글로 옮기려니 쑥스럽기까지 합니다. 자세한 것은 이제부터 쭈욱 이야기해 나가려고 합니다.
마음을 챙기며 스스로의 걸음으로 일상을 걸어가는 삶의 이야기는 함께 나눌 때 더 깊어진다고 믿습니다.
여러분도 멈춰 서서 지금의 자신과 삶의 길을 바라본 적이 있나요?
함께 이야기하며 각자의 길에서 발견한 것을 나눠보고 싶습니다.
Life is all made up. - Rick Tamly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