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을 쓰고 싶어 브런치에 자꾸 오래 머물다보니, 요즘의 저에겐 전업보다 부업(글쓰기)이 더 당깁니다. 글쓰기가 돈을 벌어주지는 않으니 부업이라 할 수도 없지요. 현재로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인기를 얻는 것도 아닌데도 왜 그럴까요...
많은 작가님들의 글에서도 공통적으로 볼 수 있었던 글쓰기의 매력은, 자기 자신과 만나는 통로라는 점입니다. 매일 차곡차곡 쌓이는 글쓰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이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실감한다는 증언들이 곳곳에 있지요. 저 또한 글쓰는 것이 치유적인 경험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는 중이니, 다른 작가님들의 이런 증언은 저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중입이다.
많은 사람들이 복잡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괴롭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상담실을 찾는 분들에게서도 자기 자신이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삶에서 어떤 걸 원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좋을지를 잘 모르겠다는 얘길 자주 듣곤 하는데요. 이러한 호소는 비단 상담을 받으려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변화무쌍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들의 고민거리가 아닐까 합니다. 저 또한 생각이 늘 많은데, 생각은 휘발성이 강해서 어떤 결론이나 끝을 맺지 못하고 날아가 버리는 경우가 많지요. 그럴 때마다 종이와 펜이 간절해 질때도 있지만, 귀찮아서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휘발시켜버리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제는 글을 좀 더 가까이에 두어야겠다고 마음 먹고 가능하면 지체하지 않고 기록을 남겨두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생각이 더 정리되고 매듭이 지어짐을 느껴요.
글쓰기는 생각에 마침표를 찍는 행위입니다. 결론도 없이 이어지다 사라지는 온갖 떠다니는 생각들을 붙들어 끌고와 기어이 마침표를 찍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글쓰기였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글을 쓰고 나면 내 생각이 이런거였구나 하고 생각을 한 발치 떨어져서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생각에 거리를 두고 떨어져 관찰한다는 것은 다름아닌 '메타인지'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일 입니다. 글쓰기가 자연스레 자기-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단계로 진입시켜 주는 셈이지요.
심리치료에서는 '정신화(mentalizing)'라고 부르는 치료적 과정이 있습니다. 정신화는 행동이나 말, 생각들에 깔려있는 자신의 욕구나 더 깊은 내적 동기, 갈등과 같은 정신적 상태를 좀더 초월적인 인지상태에서 자각하는 것을 뜻합니다. 간단히 말해, 표면적으로 드러난 말과 행동에서 '마음 깊숙이 자리한 진실(욕구, 감정, 신념, 환상 등)'을 분리하여 발견하고 깨달아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친구에게 버럭 화를 낸 나의 행동을 통해서 '내가 지금 굉장히 화가 나 있구나. 내가 지금 상대방에게 존중받고 싶은 욕구가 무시당했다고 느껴서 화를 심하게 표출했구나. 그런데 정말 친구가 날 존중하지 않은 것일까' 하고 자각하면서 자신의 행동과 화난 감정, 타인의 반응을 분리시켜 이해하는 정신활동입니다.
경험의 안과 밖을 유연하게 넘나들며 바라보지 못하고, 감정, 생각, 행동, 과거와 현재, 생각과 사실 같은 것들을 구분하지 못하는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정신화'능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정신화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통해서 심리치료의 목표를 달성시키는데 집중하기도 합니다.
글쓰기가 치유적인 이유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겠습니다. 글쓰기를 통해서 경험을 다시 복기하고 그 경험 속에 담긴 나의 욕구, 감정, 과거의 잔재를 새삼 발견하기도 합니다. 글쓰기로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만납니다. 과거를 새로 쓸 수도 있습니다. 심리치료 또한 자신에 대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는 일이기도 한데요. 과거의 일을 바꿀 수 없지만 그 의미에 대해 새로운 서사를 엮어 가는 것이지요. 글쓰기를 통해서도 이러한 과정이 실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면 새삼 전업정신에도 불이 반짝 켜집니다. 이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입니다.
나를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여러 생각들에 대해 그때그때 마침표를 찍게 해주는 고마운 글쓰기. 경험을 새롭게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는 글쓰기. 엄마니까, 상담자니까, 누구니까... 하면서 내뱉지 못하고 꾹 눌러 놓았던 것들을 하나하나 쓰려니 설레입니다. 그래서 다들 그리 부지런히 글을 쓰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