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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비 Jun 20. 2023

만두 먹을까?(@흔희)

#1. 당신의 인생 음식은 무엇인가요?


오랜만에 부산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횡단하여 나들이를 다녀왔다. 점심을 애매한 시간에 먹어 저녁을 건너뛰었더니 밤이 되자 촐촐하다. 밥을 먹기엔 무겁고 너무 가볍게 먹자니 다시 촐촐해질 것 같다. 옆에서 빨래를 개고 있는 남편에게 묻는다.


  “만두 먹을까?”


  찜솥에 물을 붓고 냉동만두 12개를 올린다. 물이 끓고 약불로 줄인 뒤 7분 정도를 더 찐다. 뚜껑을 열자 김이 한꺼번에 몰려 나온다. 젓가락으로 만두 하나를 쿡 쑤셔본다. 막힘없이 들어간다. 간장에 식초를 조금 넣고 고춧가루를 넣는다. 만두를 보기 좋게 옮겨 담은 후 거실 테이블로 들고간다. 만두를 초간장에 찍어 한입 베어문다. 고기의 육즙을 잘 머금은 잡채와 야채가 입 안에서 한 데 어우러진다. 간장의 짭조름함과 식초의 신맛이 느끼함을 잡아준다. 갑자기 남편이 온 몸을 비틀어댄다. 갓 찐 만두를 한 입에 넣었다가 그 열기에 감당을 하지 못하는 몸부림이었다. 


  맛을 감별하는 평균점이 낮은 탓인지 웬만한 음식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편이다. 그래서 인생 음식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우두커니 글자를 바라보다가 인생과 음식 사이에 쉼표를 한 번 찍어본다. 인생, 음식. 인생과 음식. 삶의 한 장면을 담고 있는 음식. 설핏 만두가 떠오른다.


  결혼한 날이었다. 식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후 씻고 나왔다. 하객들에게 인사하고 다니느라, 식이 주는 중압감 때문에 하루 종일 제대로 무언가를 먹지 못했다. 늦은 밤, 주린 배를 움켜쥐고 갓 결혼한 신혼부부는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그러다가 눈에 띈 것이 찐만두를 파는 트럭이었다. 자연스럽게 트럭 앞에 서서 만두를 샀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소박한 만찬을 즐기며 따숩게 잠이 들었다.


  중국에서는 만두를 끼니로 먹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만두는 밥을 대신하기에는 조금 아쉽다. 밥상의 주인공 자리는 맡지 못한다. 반찬으로 먹기에는 무겁고 밥으로 대체하기에는 가벼운 그런 애매함이 만두가 주는 매력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이 되지는 못하지만 주인공이 힘들때마다 말없이 맥주 한잔을 건네는 주변 인물 정도의 느낌. 나는 주인공 옆에 있는 주변 인물에게 마음이 잘 간다. 밴드의 공연을 봐도 보컬이나 기타리스트보다는 뒤에서 무게를 잡아주는 드러머에게 눈길이 간다. 예능을 봐도 분위기를 끌어가는 사람 옆에서 열심히 반응을 보이며 자리를 지켜주는 누군가에게 마음이 간다. 그래서 나는 만두가 좋다. 존재감이 뚜렷하진 않지만 묵묵하게 애매한 끼니를 채워주는 그 소박함과 따뜻함이 좋다.


  2019년 크리스마스 이브. 며칠 전부터 몸살기운이 있었다.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었다. 느낌이 쎄했다. 독감이었다. 처방받은 약을 먹고 나자 구역질이 계속 나왔다. 기침과 고열로 몸이 붕 뜬 느낌인데 그것보다는 미친듯이 올라오는 신물이 더 괴로웠다. 태어나서 그렇게 아픈 적은 처음이었다. 나에게는 출산의 고통보다 A형 독감이 주는 고통이 더 컸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고 먹을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잠을 자도 이런 저런 환영인지 악몽인지 모를 것들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남편이 가까이 사는 친정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현관문이 드르륵 열린다. 집에 뚜벅뚜벅 걸어 들어온 엄마가 방문을 열며 말했다. 


  ”만두 사왔다, 먹어라.“


  이마에 수건을 대고 누워있던 나는 그 말을 듣고 부시럭거리며 일어났다. 집의 제일 끄트머리 방에 격리되어있던 나는 엄마가 넣어주는 만두를 우걱우걱 씹어먹었다. 맛있었다. 한 숨 푹 자고 일어나자 펄펄 끓던 열은 내렸고 다음날부터 다시 밥을 챙겨먹기 시작했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라는 노래 제목이 떠오른다. 어쩌면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백마디 말보다 작은 것을 건네어 주는 마음일 수 있다. 보잘것 없는 순간에 받는 마음은 결국 시가 되고 울림이 된다.




  한없이 땅끝으로 처져 가던 그날 엄마가 건네준 만두를 먹고 내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처럼.



[#1. 당신의 인생 음식은 무엇인가요?]  

 - 아버지 못골의 글 보러가기 : https://brunch.co.kr/@ddbee/16

 - 딸 흔희의 글 보러가기 : https://brunch.co.kr/@ddbee/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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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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