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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비 Jun 20. 2023

완당 같은 수제비(@아난)

#1. 당신의 인생 음식은 무엇인가요?

내게 인생 음식이란 ‘인생에서 꼭 기억하고 싶은 먹거리’다. 이런 음식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내 안에서 생기가 돈다. 막상 그 음식을 먹으면서는 마음에 남을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한다. 그러다 다시 그 음식을 떠올렸을 때 잊고있던 소소한 추억이 함께 온다. 우리집의 ‘완당 같은 수제비’가 내게는 손꼽히는 인생 음식이다. 


초등학교 때 일요일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 “수제비나 해먹을까?” 하고 엄마가 말하면 나는 신나서 주방으로 뛰어간다. 무엇을 해야할 지 엄마와 나는 정하지 않았는데도 모든 과정이 약속된 것 마냥 착착 진행된다. 엄마는 멸치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나는 다급하게 감자 껍질을 벗긴다. 엄마가 크고 둥근 그릇을 가져와 밀가루를 부으면 나는 채소 다듬기를 멈추고 그릇 앞에 선다. 엄마가 물을 조금씩 부어주며 밀가루 반죽이 질지 않은지 정도를 봐준다. 고수인 엄마의 눈에만 ‘적당한’ 물의 양이 보인다. 엄마가 ‘됐다!’라고 하면 나는 밀가루에 과감히 손을 뻗는다. 그 때부터 세상에 나와 밀가루 덩어리만 존재하는것처럼 온 힘을 다해 반죽을 뭉치고 들어올려서 그릇안으로 던진다. 반죽을 뭉치고 던지기를 반복하면 거칠거칠했던 반죽의 표면이 매끄러워진다. 반죽을 얇게 늘렸을 때 반죽을 잡고 있는 손가락이 비칠 정도가 되면 합격이다. 반죽을 조금씩 떼어내어 밀고 또 밀어 도마, 쟁반 위에 반죽을 펼쳐둔다. 

  온 집에 멸치 냄새가 자욱하게 퍼지고 보글보글 소리가 격해질 때쯤 육수가 완성된다. ‘반죽 갖고와봐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마음이 급해진다. 아직 밀지 못한 반죽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일단 되는대로 밀어놓은 반죽을 엄마에게 주면 엄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냄비 위에서 반죽을 찢어서 넣는다. 나는 재빨리 반죽을 밀대로 밀고 또 민다. 그렇지만 더 빠른 엄마의 손에 늘 잡히고야 만다. 그러면 두툼한 수제비 반죽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나는 그게 그렇게 속상했다. 
 

 완성된 수제비를 국그릇에 담으면 수저를 놓고 언니와 아부지를 부른다. 마지막 맛내기의 최고 정점으로 참기름을 넣어야 한다. 참기름을 조금 넣으려는 엄마와 많이 넣어야 맛있다는 아버지 사이에서 참기름병의 기울기 주도권이 팽팽하게 맞서 ‘더더더더~’하며 웃는다. 푸욱 퍼져 모서리의 경계가 사라지고 둥글게 변해버린 감자와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와 온몸을 따뜻하게 녹여준다. 수제비를 한 숟갈 가득 입에 머금고 있다가 엄마와 아버지가 “와! 진짜 완당 같다!”라고 하시면 그날의 수제비가 최고라는 말이다. 
 

 이렇게 주말에 종종 듣던 ‘완당’을 정작 나는 스무살이 넘어서야 먹어보았다. 완당이 뭔지도 모르면서 ‘수제비가 완당 같다’고 하면 그렇게 좋았다. 마침내 가족들과 광복동의 ‘18번 완당’집을 가서  먹어보고는 실망했다. 별것 없었다. 매우 얇은 만두피 끝 부분에 만두소를 조금씩 더해서 만든 완당을 멸치 육수에 끓인 음식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광복동을 갈 때마다 젊은 시절의 추억을 ‘완당’과 함께 불러낸다. 엄마와 아버지가 데이트를 할 때 ‘18번 완당’ 집을 자주 갔다. 엄마가 퇴근하여 입맛이 없을 때 18번 완당집에 가서 완당 한 그릇을 먹으면 그렇게 맛있었다고 했다. 나의 드높은 기대치에 음식 자체는 엄청난 맛은 아니었지만, 완당은 엄마와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눈에 그려지게 만들어주었다. 훗날 딸과 함께 광복동으로 와서 완당을 먹게될 것이라고 그 때의 엄마와 아버지는 상상이나 했을까? 완당 한 숟갈에 엄마 아버지의 젊은 시절과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이후 내가 결혼을 하고 한동안 휘몰아치는 갈등으로 부부관계가 바닥을 치던 시절이었다. 집에는 갑갑해서 못있겠고 엄마와 아버지를 토요일에 불러내어서 결혼이 나를 옥죄는거 같다며 마음을 털어놓았다. 공원을 한참 거닐며 이야기를 하다가 사진도 찍고 배도 고파져 ‘두보완당’이라는 수영의 완당집에 갔다. 엄마와 아버지와 완당을 맛있게 먹고서 그날 밤 광안리에서 나는 아버지에게 울며 소리쳤다. 잘 보낸 하루 마지막에 아버지와 나는 서로 불꽃이 튀듯 격한 말을 주고 받으며 싸웠다. 광안리 하늘에 수백대의 드론을 띄워 프로포즈를 하는 로맨틱한 밤에 모두가 빠져있을 때, 아버지와 나는 주위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결혼 생활을 돌이켜보고 비난하고 원망하면서 서로의 분노 한계점을 끝없이 높였다. 1주일 뒤, 남편과 극적인 화해를 하고 다시 엄마와 아버지 앞에 섰다. 몹시 민망하고 머쓱해하는 내게 아버지는 ‘가족은 쪽팔림의 연속이다’라고 하셨다. 이제 ‘완당’하면 엄마, 아버지와의 젊은 날에 더해 광안리에서 목에 핏대를 올려가며 아버지와 언쟁을 벌이던 순간이 함께 떠올라 웃게 된다. 


지난 주말 친구들과 ‘두보완당’에 가서 완당을 먹었다. 완당은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음식이다. 뭔가 아쉬움이 느껴지는 건 내가 익히 접해온 우리집만의 ‘완당 같은 수제비’가 더 그립기 때문이다. 흐물흐물해진 감자와 얇디얇아 숟가락에서 미끄러지는 쫄깃한 수제비 피! 시원한 국물에 참기름의 고소한 향이 가득 퍼지는 우리집 수제비가 먹고 싶다. 20대가 된 이후 집을 떠나 거의 만들어 먹지 않았는데 언제 한 번 장산집으로 가 완당 같은 수제비를 만들어 먹고 싶다. 이번에는 빠른 엄마의 손보다 더 빨리 모든 반죽을 얇게 빚어보려한다.



[#1. 당신의 인생 음식은 무엇인가요?]  

 - 아버지 못골의 글 보러가기 : https://brunch.co.kr/@ddbee/16

 - 딸 흔희의 글 보러가기 : https://brunch.co.kr/@ddbee/14

 - 딸 아난의 글 보러가기 : https://brunch.co.kr/@ddbee/15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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