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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비 Nov 06. 2023

어디에나, 어디에도, 강약약강(@아난)

#6. 내가 미워하는 것


  

내게 ‘미움’이란 어떤 사람들에게는 괜찮지만 내게는 경멸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싫다’와 비교해보면 ‘밉다‘에는 혐오하는 감정이 더 들어간다. ‘고기를 싫어한다.’에는 취향의 차이가 담기지만 ’고기를 미워한다‘에는 감정적으로 부정적 의미가 담기듯 말이다. 내가 유독 미워하는 것은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람(이하 강약약강)이다. 


작은 스타트업부터 다국적 기업과 공공기관까지 취업하여 경험해보니 ‘강약약강’은 어느 조직에나 있다. 큰 조직에서 ’강약약강‘은 위계 구조에서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한 자리싸움이라 이해했다.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은 비교적 젊기에 더 빠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으로 ’강약약강‘에 대한 정화작용이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내가 경험했던 스타트업에서는 젊은이들이 성장하고자 하는 마음을 볼모 삼아 더 악랄하게 강약약강의 자세로 박봉과 열정페이로 구성원들을 착취했다. 


많은 기대를 안고 몸담았던 여행사 스타트업에서 ’강약약강은 인간의 본능이지 않을까‘를 배우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직원이 3명이던 시절부터 나는 합류했다. 이 회사는 투자금 없이 수요자들의 거래만으로도 점점 커나갔기에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믿으며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초창기부터 일해온 오스트리아인 디자이너 F가 갑자기 그만뒀다고 대표가 말했다. 사무실에 상주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같이 일하던 동료였기에 인사도 못 해 아쉬웠다. 몇 개월 후 싱가포르인 동료 J로부터 F가 대표에게 갑자기 해고통보를 받아 인사를 못 했던 것이라는 말을 건네 들었다. 프리랜서이고 외국인이기에 F는 그것이 부당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그저 회사를 떠났다. 그 이후로 공동 창업자라 해야 할 정도로 회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싱가포르인 동료 J도 갑자기 잘렸다. 미국 교포 출신이던 동료 S도 평소처럼 근무하고 있다가 오후 4시에 갑자기 해고통보를 받고 다음 날부터 나오지 않았다. 같이 일했던 홍콩인 동료는 워킹 홀리데이 제도를 통해 한국으로 와서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의 능력이 워낙 출중해 여행사 업무로 바뀌었는데 처우는 바뀌지 않고 고시원에서 박봉의 월급을 받으며 일했다. 


이 모든 동료가 갈리고 떠나가는 동안 곧 칼날이 내게도 올 것이라 직감했다. 대표는 사람을 귀히 여기지 않고 회사가 커나가는 과정의 도구로 보았다. 자신과 같은 뜻을 가진 강약약강 동료의 말만 들으며 직원을 판단했고 자신에게 직언하는 개발자와 직원들은 해고해나갔다. 집 이사를 위해 그 해 첫 연차를 쓰고 출근한 날, 나 역시 해고통보를 받았다. 마치 선심 쓰듯 프리랜서 계약을 제시하길래 근로계약과 다르다고 말하자 대표는 “어떻게 계약서대로 일하니?”라는 주옥같은 대사를 던졌다. 대표는 회사 구성원 중 근로계약서를 쓰고 근무를 시작한 직원이 나뿐이라고 했다. 많은 동료가 떠나가는 동안 나 역시 방관자와 다르지 않았다는 불편한 마음과 죄책감도 들었다. 약자인 외국인을 더 착취하여 사람을 도구처럼 쓰다 버리는 강약약강 대표를 조지고 싶었다. 변호사인 선배에게 연락해 조언을 얻었고 내 상황이 법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 날 나는 회사로 출근하여 대표를 포함한 모든 직원을 한 공간에 불렀고 나의 칼춤이 시작됐다. 일방적 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고 법적인 근거를 들어 명확하지 않은 사유로 정규직을 이런 식으로 해고할 수 없다고 했다. 구체적인 일자와 함께 전 과정을 말하며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많고 다른 동료들의 미래가 될 수도 있어 모두 알아야 하기에 불렀다고 했다. 다른 동료들은 내가 하는 업무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도 없는데 업무적으로 꼭 필요한 사람을 아무 이유 없이 자르는 게 불합리한 결정이라고 했다. 함께 분노하며 나를 해고하면 자신도 그만두겠다고 하는 동료도 있어 외롭지 않았다. 수세에 몰린 대표는 눈물을 흘렸다. 대표로서 얼마나 외로웠는지 내가 다가와 주길 바랐다며 횡설수설 말을 쏟아냈다. 회사 경영상의 이유로 해고하는 것이니 실업급여와 합의금 지급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이마저도 끝내 입금이 되지 않고 대표는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다른 회사에 합격하면서 고용보험에 있어 이중 가입이 문제가 될까봐 빨리 이 사태를 끝내고 싶었다. 한 달 월급치 정도로 합의금을 말하자 10분 만에 대표는 입금을 마쳤고 나는 고단했던 서울살이를 정리했다. 이후 강약약강만 남은 이 회사의 최후는 폐업이었다. 


강약약강을 제외하고 보면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 감사한 하루하루였다. 매일 아침 근무 시작 전에 건물 1층에 있는 커피집에서 IT팀과 마케팅팀이 번갈아 가며 음료를 대접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칭찬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고 각자 배우고 싶은 부분에 관해 이야기하며 뜨겁고 열정적으로 일했다. 그때 치열하게 배운 업무와 자세를 밑천 삼아 아직도 밥벌이해나가고 있다. ‘강약약강 멤버들만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가정을 요즘도 종종 해본다.


지금도 또 다른 얼굴로 내 옆에 있는 ‘강약약강’은 내게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가 ‘존중’과 ‘공정’임을 계속 일깨워준다. 나는 있는 그대로 각자의 모습을 이해하고 존중받으며 살고 싶다. 존중받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며 자신의 몫을 해나가야 한다. 그 몫을 나눔에 있어 수치상 같은 양으로 1인분의 몫을 나누는 '공평'보다는 약자가 좀 더 출발선 앞에서 시작할 수 있는 '공정'이 필요하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귀히 여긴다면 지켜질 수 있는 가치다. 그러나 강약약강의 태도를 보인 사람에게 사람은 도구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용 가치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고 버린다. 나 역시 조직이라는 촘촘한 피라미드 안에서 ‘강약약강’이 되지 않으려 글을 쓰고 그 시간을 곱씹는다. 언제든 내가 강약약강의 희생자 혹은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날 선 긴장감을 간직한 채. 




[#6. 내가 미워하는 것]  

 - 아버지 못골 글 보러가기 : 표변(豹變) https://brunch.co.kr/@ddbee/36

 - 딸 흔희의 글 보러가기 : 내가 미워하는 것 https://brunch.co.kr/@ddbee/34

 - 딸 아난의 글 보러가기 : 어디에나, 어디에도, 강약약강 https://brunch.co.kr/@ddbee/35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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