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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비 Nov 06. 2023

표변(豹變) @못골

#6. 내가 미워하는 것


표변 : 표범의 털이 철에 따라 털갈이 함으로써 그 무늬가 달라지듯이 언행이나 태도 의견 등이 이전과 뚜렷이 달라짐을 이르는 말, 마음이나 행동이 갑자기 변함을 이르는 말.

  

나는 갑자기 행동이나 태도, 또는 생각이 바뀌는 인간을 유독 싫어한다.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측이 곤란하면 당혹스럽다.

 

'우리는 동지네, 형제네' 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표변하여 모르는 체한다. 함께 술을 마시고 내 집에까지 방문하여 “집은 그래도 마련해 살고 있네요!” 하고 함께 웃으며 친하게 지냈다. 그는 술자리가 지나치면서 음주로 귀양을 갔다 와서 지역 점수를 얻어 오히려 그를 기반으로 관리자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 함께 근무하게 되자 나를 모르는 사람처럼 대한다. 직책, 역할, 훈포상, 연수, 업무 등이 인사위원회, 직원회의 등의 공적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고 미리 자신들끼리 사사로이 장막 뒤에서 결정하였다. 1표가 많으면 다수결 원칙에서 자신들이 이겼다고 하다가 1표가 부족하면 겨우 1표 차이이니 결정을 번복하더라도 이해해 달라는 식의 독재를 예사로 행사했다. 지위가 바뀌면서 사람도 표변했다.

 

근무지를 옮겨 가서 보면 만날 때 “형님 형님” 하며 따르던 직원이 간혹 있다. 그런 동료 직원이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모른 체한다. '어째 저럴 수가 있는가'하고 신기하지만 그게 그들의 처세 방법이다. 동료 직원의 배려로 거액을 빌려 횟집을 개업한 직원이 있었다. 그 횟집이 문을 닫자 채권자인 친구에게 빌린 것이 아니라 공동 투자를 한 것이라며 억지를 부려 빚 갚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파산선고를 받는 친구도 있다. 그를 보면 사람에 대한 절망감까지 느껴진다. 지금까지 잘 지내다가 오늘부터는 일절 모르는 사람 관계로 갑자기 변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가능한 것이다. 모두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난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형님'을 또 입에 단다. 함께 어울려 술도 마시고 노래방도 가며 음주가무를 같이 한다. 그런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관리자 측으로 편입되어 내 목을 조른다. 

 

함께 활동하던 회원이 단체에서 돈을 빌려 전세를 마련했다. 시간이 지나서 그 돈을 갚아야 함에도 모른 체하더니 급기야는 단체에서 갚으라고 하니 “네가 뭔데” 하며 눈에 핏발을 세운다.


동복을 입고 앨범 촬영을 하는데 하복을 입고 온 학생이 있어 “갈아입어라!”라고 하니 “안 찍으면 될 거 아이가?”하는 막말을 하며 도망쳐 버린다. 다음 날 꿇어앉아 잘못했다고 빌면서도 다음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표변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다음에 올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지금만 생각하고 기분대로 한다면 못 할 일이 없다.

 

가출할 많은 사유를 안고 있으면서도 나는 한 번도 가출해 보지 못했다. 뻔한 결과를 앞질러 상상해본다. 돌아와서 잘못했다고 꿇어앉아 머리를 조아리며 어머니에게 용서를 빌 굴욕감이 너무 충격적이라서 가출 한번 못 해보았다. 쉽게 가출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결단력이 부럽기도 하다 가출이 뜻하는 것은 표변하여 부모님에게 또는 배우자에게 나의 달라진 모습으로 내 주장을 강제하겠다는 또 다른 항의이다. 예측하지 못한 가출일수록 더 효과적이다. 표변했기 때문이다.

 

표변은 예측하지 못한 상대방에게 당혹감을 주기 때문에 더 악질적이다. 1981년 1월에 만든 사진 모임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 월 1회씩 만났으니 번개로 만난 것까지 합치면 초등, 중등, 대학을 함께 한 친구들보다 더 만남의 횟수가 많다. 그런데도 이 모임에 나오지 않으면 그것으로 만남은 끝이다. 어디에서든 우연히도 잘 만나지지 않는다. 만나지 않기에 내 아이 결혼식 때 청첩하지 않았더니 뒤에 만나 자신을 무시했다며 표변하여 술을 마시고 눈에 핏발을 세우던 후배가 있다. 섭섭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대개 표변하는 사람들은 그 행동이 관계를 끝내는 한 가지 방법이라 본다. 왜 관계를 아련히 그리워하는 좋은 사람으로 남지 않고 그렇게 부정적인 모습으로 기억되게 하려 할까? 표변하는 사람, 난 그런 사람 그런 순간이 싫다. 표변한 사람은 세월이 지나고, 한참 지나고 나서 만나면 그때 그렇게 한 행위가 잘못되었다며 대개 사과한다. 역시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그 순간에 한 생각만으로 움직인 결과이다. 표변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모든 면에서 뒤바뀔 가능성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싫다. 신뢰성이 사라진 사람이 싫다.




[#6. 내가 미워하는 것]  

 - 아버지 못골 글 보러가기 : 표변(豹變) https://brunch.co.kr/@ddbee/36

 - 딸 흔희의 글 보러가기 : 내가 미워하는 것 https://brunch.co.kr/@ddbee/34

 - 딸 아난의 글 보러가기 : 어디에나, 어디에도, 강약약강 https://brunch.co.kr/@ddbee/35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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