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내가 미워하는 것
차남은 투쟁적이다. 형에게 늘 빼앗기고 있다는 박탈감을 크게 느낀다. 물론 장남의 입장에서도 늘 동생에게 양보하고 함께 놀아 주어야 한다는 구속감으로 역시 박탈감을 느낀다. 가족 간인데도 이를 박탈감이라고 표현하긴 하지만 형제간의 우애라는 시각으로 보는 사람도 많이 있다. 양보하는 장남과 투쟁하는 차남, 형들을 보고 시행착오를 미리 교정하는 셋째, 그래서 셋째 딸은 선도 안 보고 며느리로 선택한다는 말이 있다. 각자가 취한 입장에서 보면 늘 자기의 주장이 옳다. 자기 편견적 옳음 그 말이 맞다. 어제 등산 가서 건강 지키려 맨발로 산을 내려오는 젊은 여인을 보고 “다치겠습니다!” 하고 감탄하며 말하니 은행열매 냄새나는 할배라고 대꾸도 하지 않고 무시해 버린다. 그런 나이가 되니 나의 주장이 옳은 것만은 아니었구나! 하고 생각한다. 옳다고 바르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된 것이었구나 하고 반성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내 나름대로 바르게 살았다고 생각하는데도 돌아보면 제 잘난 맛에 헛발질한 경우가 많다. 그래도 바르게 살아보려 지금도 반성하며 노력하는 중이다.
그 수많은 날들 속에서 지금도 내가 싫어하는 것은 불공정이다. 공정은 공평하고 올바른 것이다. 불공정은 누구에게 편파적이고 그른 것이다. 내가 몸담았던 직장은 2월이 되면 불공정의 정점에 관리자가 있고 그를 중심으로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이익을 균분한다. 일을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중심에 두고 호 불호에 의해 능력이 심판되고 지위가 결정된다. 옳지 않음을, 공정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편리함과 이권 앞에서는 공정함은 저만큼 내팽개쳐진다. 좀 덜하냐 더하냐 하는 문제이다. 새로 부임해 오는 관리자가 아이들을 위해 일해 보려는 열의를 보이면 얼마나 가나 두고 보게 된다. 가만 관찰해 보면 6개월이 넘어가지 않아 자신의 본색이 드러난다. 함께 생활했던 7~8명의 관리자와 예비 관리자, 그리고 많은 관리자가 되려는 사람들을 보았지만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는 생각도 가치관도 사명감도 무엇 하나 같은 것이 없다.
아랫사람에게 친절하고 늘 약한 사람을 지지하며 자신의 생각을 잘 지켜나가는 저 사람은 도저히 관리자가 될 수 있는 성향이 아니다. 그런 사람이 진급에 욕심을 낸다. 그들은 시간이 지나고 보면 모두 진급에서 낙이거나 도중하차이다. 내가 본 진급을 꿈꾸는 사람들의 성향이다. 내 직장에서 진급은 그렇게 자신의 신념은 떼 놓고 눈치와 헌신에 매몰되어야만 가능하다. 모든 이권을 포기한 인간, 즉 ‘근무지도, 점수도, 성과급도 모두 포기해 버린 인간'은 제어할 방법이 없다며 열외로 치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살아보니 눈치 속에 산 사람이나 눈치를 밟다가 다친 사람이나 말년이 되면 모두 비슷하다.
법 앞의 평등이 얼마나 허구인가 하는 것은 학교를 졸업할 때쯤이면 실감하게 된다.
경험 없는 신입사원에게 가장 하기 싫거나 힘든 업무를 맡기는 직장 풍토, 관리자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학생회장 입후보자를 포기하도록 종용했다고 한다. 성적을 내세워 얼마나 많은 능력 있는 아이들을 배제하고 무능력으로 몰았을까?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불공정을 마치 공정한 한 것처럼 나발을 불러대도, 그것을 믿으려는 많은 내 또래 사람들은 불공정에 대한 무감각이 체화되어 있다. 누구에게 편파적이라는 것은 그 상대에게는 불평등이다. 불공정하다고 아빠 찬스라고 그렇게 목에 핏줄을 올리며 '공정'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왜 진작 그보다 더한 아빠 찬스에는 눈감는지? 아예 소리를 내지 않는다. 별로 학력이 높지 않은 우리 아버지가 내 어릴 때 흘리듯 한 말이 머릿속에 각인된다. “왜 배운놈들은 모두 빨갱이가 되는지 쯧쯧!” 자라서 보니 남보다 사회 모순을 먼저 알게 되어서 그런 건 아닐까?
물론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 많이 배운 인간들이 얼마나 사회를 망쳐 놓았나? 강아지도 불평등은 못 참는다고 하지 않는가? 성 불평등, 임금 불평등, 업무 불평등, 주권 불평등, 인종차별, 학벌주의, 지연혈연 매몰주의 등등 불공정을 위한 요소는 주변에 널브러져 있다. 그 널브러진 막 가는 요소들 중에 그래도 주변에 어울리는 내 친구들은 불공정을 불공정하다고 주장하다가 평생 손해를 보며 지금도 꿋꿋하게 살아간다. 그냥 어울려 점심이나 저녁 식사로 돼지 국밥에 소주 한잔이면 하루를 잘 보냈다고 허허거리며 손 흔들어 작별한다. 퇴직할 때쯤 선배가 한 말이 생각난다. “야! 니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서 좋겠다!” 그래서 내가 웃으며 마음속에 떠 올린 말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산 경제적 대가가 얼마인 줄 알기나 하요? 그것 지키려고 그렇게 참으며 당신은 살았구려’ 하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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