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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비 Feb 02. 2024

대티고개의 내력벽(@흔희)

#11. 부산에서 기억하고 싶은 장소

산과 바다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부산에는 유난히 구비구비 높은 고개가 많다. 두 다리로 걸어다니는 것이 이동의 전부였던 시대에 도보꾼들은 험준한 산을 타기가 힘들어 고개를 찾아다녔다. 비탈진 곳을 넘어다닌 사람들의 발자국들이 모여 길이 났고 그 길은 고개가 되었다. 부산에는 대티고개, 영선고개, 문현고개, 만덕고개 등 험준한 지형만큼이나 다양한 고개가 머리를 치들고 있다. 고개는 지름길인 동시에 마을과 마을을 구분해주는 경계선이 되기도 했다는데 그 중 대티고개는 내가 신혼의 첫 둥지를 튼 곳이기도 하다. 대티고개는 부산의 서쪽 길목에 자리잡고 있다. 그 옛날, 부산진에서 하단에 서는 장에 가기 위해 아낙네들은 재첩을 머리에 이고 대티고개를 넘었다. 대티고개 주변의 마을인 괴정과 하단의 사람들은 대티고개를 ‘재첩고개’라고 부르기도 한다.


처음 마련한 신혼집은 대티고개의 중턱에 자리 잡고 있던 아파트였다. 도로길 옆의 큰길을 따라 비교적 완만하게 둘러 집까지 올라갈 수도 있었지만 성격이 급한 남편과 나는 지름길을 찾아 그 길로 자주 다녔다. 산 비탈길을 계단처럼 깎아 터를 닦은 곳에 주택들이 밀집되어 있었다. 우리가 찾은 지름길은 그곳에 난 계단길이었는데 계단의 턱도 높고 가팔라서 자칫 발을 헛디디면 그대로 굴러 떨어질 법한 곳이었다. 길을 따라 내려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었고 횡단보도를 건너면 간단하게 시장을 볼 수 있는 작은 동네 마트가 있었다. 당시 차가 없었던 우리는 그 길을 따라 장을 보곤 했다. 하루는 집들이를 준비하기 위해 등에 배낭을 짊어지고 시장을 봤다. 둘이서 손을 꼭 잡고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가는데 남편 가방에서 짤랑짤랑 소리가 들려왔다. 소주병이 부딪치며 나는 소리였다. 등에 짐을 메고 헉헉거리며 올라가는 남편이 영락없는 봇짐장수 같아 웃음이 터졌다. 내 웃음에 덩달아 남편도 웃음이 났던 모양이다. 둘이서 그렇게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웃었다.


결혼한 지 7개월 만에 아기가 찾아왔다. 뱃속에서 잘 놀고 있는지 병원에서 아기를 확인하고 돌아오던 길도 늘 그 비탈길을 올라 다녔다. 남편은 검진일마다 함께 병원을 다녀와주었다. 아기를 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혼자 병원에 보내기에 안쓰러운 마음도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더운 여름날엔 아이스크림을 서로 입에 하나씩 물고, 배가 무거워 뒤뚱이는 나를 남편이 뒤에서 받쳐주며 비탈길을 오르내렸다. 10개월이 지나 아기는 태어났고 친정에서 몸을 풀고 돌아온 곳도 대티고개의 아파트였다. 남편은 집을 말끔하게 치워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기 침대에 이제 겨우 50일을 넘긴 아기를 눕혀 놓았다. 혹시나 깰까 봐 숨죽이며 아기가 자는 모습을 둘이서 바라보았다. 그렇게 우리는 둘이서 시작한 곳에서 셋이 되었다.


아기가 태어나니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아기를 안고 나는 밤마다 전쟁을 치러야 했고 호르몬과 피로감에 날카로워진 나를 받아내야 하는 남편도 지쳐갔다. 그중에서 제일 내가 힘들었던 것은 고립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여 활발하게 했던 사회생활이 단절되었다. 13살 때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던 동네를 떠나와 정착한 대티고개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남편이 직장에 나가 있는 동안 나는 말 못 하는 아기와 함께 하루를 보내야 했다. 언덕이 가팔라 유아차를 끌고 어딜 나갈 수도 없었다. 잠깐 낮잠이 든 아기를 누이고 나면 빈 적막감이 집을 가득 메웠다. 앉아서 흰 벽을 바라보고 멍하니 있을 때가 많았다. 가족들이 보고 싶었고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어른과의 대화가 그리웠다. 약속을 잡고 있는 친구들의 대화 메시지를 볼 때마다 이렇게 잊혀지는 것 같아서 허무했다. 점점 인간관계가 쪼그라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식을 만들기 위해 채소와 고기를 곱게 다져놓아도 그것은 아기의 입맛에 달린 일이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한다고 그것이 좋은 결과로 반드시 이어지지 않는다는 세계의 진리를 나는 육아를 통해 배웠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들 상황이 뒷받침되어주지 않으니 만남에는 한계가 있었다.


에티오피아의 겔라다개코원숭이들은 털손질을 통해 사교적인 관계를 맺고 유지해 나간다. 털 속에 숨어 있는 진드기를 골라주는 행위를 통해 그들은 청결을 관리함과 동시에 서로의 우정을 다져나간다. 곤경에 처한 원숭이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기꺼이 도움을 주는 다른 원숭이는 그 원숭이에게 털손질을 오랫동안 받아온 원숭이일 확률이 높다. 이런 원숭이의 사교계에서도 소강상태가 찾아오는 시기가 있다. 바로 출산과 양육의 시기이다. 새끼에게 모유를 주기 위해 어미 원숭이는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털손질이라는 노동을 잠시 접어두고 돌봄에 집중한다. 털손질을 받을 뿐 자기가 친구에게 털손질을 해 줄 시간은 없다. 그러다 새끼가 젖을 떼고 나면 어미 원숭이는 사교계에 복귀한다. 그동안 친구가 자신에게 털손질을 해준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친구의 털을 손질해 준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나는 그때그때 우선순위에 올라와있는 것들을 먼저 다뤄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티고개의 적막감 속에서 아이와 덩그러니 하루를 보내던 나에게 이따금씩 빛과 소리를 몰고 찾아와 주는 이들이 있었다. 내가 아니면 대티고개의 ‘대’자도 몰랐을 거라던 친구는 대티 근처에 있던 신상 카페를 물색하여 아기띠를 멘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곤 하였다. 물론 그마저도 노키즈존이라는 벽에 부딪혀 쫓겨나기 일쑤였지만 쫓겨났다는 황망함보다 옆에서 같이 열을 내어주던 네가 있어 훈기가 도는 시간들이었다. 출장 나온 길에 들러 딸기 박스를 던져주며 힘내라고 슬쩍 윙크를 건네던 친구도 있었고 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초인종을 누르고 찾아와 다시는 올라오지 못할 고개라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던 친구도 있었다. 새끼에게 모유를 먹이고 있는 친구의 털을 골라주는 행위가 비단 원숭이의 것만은 아니었다. 얼굴을 비칠 수 없는 나를 보기 위해 하루라는 시간 중 한 켠을 선뜻 내어다 주는 친구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내게도 있었다. 인간관계의 반경이 좁아지긴 했지만 원 안의 관계는 더 단단해져가고 있었다.


안으면 부서질 것 같이 작고 연약하던 아이는 작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였고 이제 막 9살이 되었다. 낯선 세계에 발을 들이는 아이를 위해 나는 작년 1년 동안 육아휴직을 하였고 오는 3월에 복직을 앞두고 있다. 그 사이에 더욱 가까워진 친구도 있고 서로를 찾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소원해진 친구들도 있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나니 친구들과의 만남에 다시 얼굴을 내비치는 일이 늘어났다. 멀어지는 관계를 일부러 잡아둔다고 잡히는 것이 아니지만 오고 가던 시간들 속에서 끊어졌던 인연이 다시 이어지는 순간도 드물게 맞이하였다. 지금은 대티고개를 떠나 또 다른 곳에서 새 둥지를 텄지만 지나가다 문득 대티 주변을 지나게 될 때면 가슴이 선덕인다. 떠나올 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탈출하듯 나온 곳이었는데 돌이켜 보면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출발의 설렘이 먼저 떠오른다. 대티고개에서 느꼈던 고립감이 설렘으로 덮일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내 곁을 묵묵하게 지켜줬던 이들 덕분일 것이다.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지을 때도 건드리지 않는 벽이 있다고 한다. 기둥과 함께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는 것이기에 그 벽을 남겨두는데 그것을 내력벽이라고 부른다. 허물어져 가던 내 인간관계에서 내력벽을 추려낼 수 있었던 시기가 대티고개에서의 시간들이었다. 고통은 사람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색이 깊어질수록 시련은 감당할 만한 것이 되고 우리는 그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채굴해 낸다. 삶은 그럭저럭 꾸려진다. 대티고개에서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좁아져가는 원안에서 드러나던 내력벽이 단단해져 가던 그 시절이 그러했듯이.



[#11. 부산에서 기억하고 싶은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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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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